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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청산 못한 친일 잔재
아직도 청산 못한 친일 잔재
  • 김혜란
  • 승인 2015.07.15 2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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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ㆍ소통과 힐링센터 소장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친일이야기가 나오자 결국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이는 분위기까지 연출됐다. 논점은 아니어서 서둘러 무마하기는 했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실 역사나 사회정치 관련, 혹은 문화예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친일문제로 논쟁을 벌이는 일은 부지기수다.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35년 일제 강점기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잊을 만하면 찌르는 대침 같은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에 친일인명사전을 내놓았다. ‘을사조약 전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 식민통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우리 민족 또는 타민족에게 신체적 물리적 정신적으로 직ㆍ간접적 피해를 끼친 자’로 친일파를 규정했다. 수록대상자의 범주는 조약 체결 등 매국 행위에 직접 가담한 민족반역자와 ‘식민통치기구의 일원으로서 식민지배의 하수인이 된 자’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미화 선전한 지식인 문화예술인’과 같은 부일협력자의 두 가지로 구분했다. 이 중 민족반역자는 전부를, 부일협력자 가운데서는 일정한 직위 이상인 자를, 그 외 정치적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할 친일행위가 뚜렷한 자를 수록대상으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밝힌 선정의 원칙은 자발성과 적극성, 반복성, 중복성, 지속성 여부였다.

 덕분에 많은 친일인물들이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 유명 인사나 그 선조가 과거 친일 행적을 보였는지가 주요한 사회적 평가 기준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한국 무용계의 전설적 존재인 최승희와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 작사자 윤치호, 해방 후 국무총리를 지낸 신현확ㆍ진의종 등이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돼 있으며 경남(부산ㆍ울산 포함) 출신이거나 경남에서 활동한 친일인사도 400여 명에 이르렀다.

 실제로 국가보훈처는 2011년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잘 알려진 장지연 선생 등 사전에 수록된 19명의 서훈을 취소했다. 또 충북 음성군의 이무영 기념사업은 ‘친일 농민문학가’라는 지적이 제기돼 결국 2011년 지원 중단이 결정됐고, 작곡가 홍난파를 기리는 ‘난파음악상’ 수상자가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창원시는 2011년 이원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계획했다가 말썽을 빚었고, 논란 끝에 창원시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은 단체가 돈을 반납하기도 했다. 그는 해방 이후 한 번도 친일을 반성한 일이 없었고, 생전에 자신의 친일작품을 끝까지 숨기려 했다고 한다.

 조두남은 친일행적이 뚜렷하다. 1940년 만주에서 친일시인 윤해영과 함께 활동하면서 다수의 친일 노래를 만들었다. 옛 마산시는 ‘조두남 음악관’을 지으려고 하다가 시민단체로부터 반발을 샀고, 옛 마산시의회는 ‘조두남 음악관’이 아닌 ‘마산음악관’으로 명칭을 바꿔 개관했다.

 노산 이은상은 마산 출신의 시조시인으로 ‘그리움’, ‘가고파’, ‘그 집 앞’ 등 그의 많은 시조는 가곡으로도 만들어지는 등 시조문학의 현대화에 이바지한 공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친일ㆍ친독재 논란으로 입질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최근 90년대 후반 이후로 사라져 간 가곡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과서에 실려 음악 시간에 열심히 불렀고, TV에서 성악가들이 그들의 기량을 뽐냈던 가곡들에는 생각보다 많은 추억이 깃들어 있다. 수많은 추억의 노래들을 찾아서 들려주기도 하는 곳이 방송인데, 막상 작사가나 작곡가들이 친일행적이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곤혹스럽다.

 이쯤되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선조의 친일행적에 대해 믿을 수 없다며 소송을 걸기도 하고, 친일인명사전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민간에서 펼친 사업이고 책이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막걸리 한잔 먹다가도 친일이야기만 나오면 치고받고 논쟁하는 국민들이 35년 굴욕의 역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국가가 친일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세우면 된다. 민간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원칙이나 지침서를 확실하게 만들면 된다. 그러면 좋은 술 마시면서 얼굴 붉히고 멱살 잡을 일이 줄어들 것이다. 물론, 원칙이나 기준을 세워야 하는 당사자들이 친일의 역사에서 자유롭지 않다면 또 다른 기준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일본은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국가 간의 약속도 어기면서 수상한(?) 야욕을 불태우고 있다. 께름칙한 일본의 행보에 맞설 범 국가 차원의 기준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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