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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메카 경남 현주소
한국영화의 메카 경남 현주소
  • 김혜란
  • 승인 2015.07.08 2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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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ㆍ소통과 힐링센터 소장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로 20회째다. 올해는 집행위원장을 이용관과 배우 강수연이 공동으로 맡는다고 한다. 국고보조금 삭감과 시 당국과의 한때 냉랭했던 시간을 딛고 당장 올해 영화제를 제대로 치러내야 하는 상황인 모양이다.

 10년 동안 장유와 부산을 오가며 일했다. 3년 정도는 영화의 전당 맞은편 건물 KNN 신사옥에서 일했다. 방송으로 국제영화제 이야기는 수도 없이 했지만, 영화 한 편 제때 챙겨보기가 힘들었다. 그저 영화제 기간 동안 출퇴근할 때 차가 밀려 힘들었고, 미디어센터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더빙작업만 밤을 밝히면서 했던 기억이 진하게 남는다.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국제영화제는 해당지역 사람들을 위한 축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최근 가슴 뛰는 꿈을 꾸게 됐다. 창원의 상남동에 미 군정 시절, 미 공보원 상남영화제작소가 15년 동안이나 활동했다는 사실을 듣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리버티 늬우스(대한뉴스 형식)’가 제작됐고, 영화를 배우고 제작한 한국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 당시 사실을 증언하는 어르신들이 아직 살고 계시다.

 조금 더 나아가면, 마산 진전면 봉곡리 출신 강호 감독은 1920~30년대 일제 강점기에 영화를 만든 경남 최초의 영화감독이다. 이웃 마을 오서리 출신 권환 시인의 아버지가 만든 경행학교를 거쳐서 창신학교를 다녔다. 13살의 나이로 일본유학을 떠나 우유 배달, 빵집 심부름꾼을 전전하며 교토의 미술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다. 초기에는 미술 활동을 했지만 결국 영화로 눈을 돌렸고 나운규에게 영화에 대한 이론기술을 습득, 영화 ‘암로’와 ‘지하촌’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암로’의 주제가는 고복수 선생의 리바이벌 곡으로 남아있는데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듣는 순간 온몸에 알 수 없는 소름이 돋았다. 영화가 만들어졌을 당시는 무성영화였던 특징상 출연배우 김연실이 직접 무대 앞으로 나와 불렀다고 한다. 영화 ‘암로’의 제작비 중 상당 부분은 진전면 오서리의 권씨 문중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데(이성철, 경남지역 영화사), 고 노무현 대통령의 영부인 권양숙 여사가 문중행사에 자주 참여한 그 문중이다.

 그동안 한국영화사 속에서 철저히 사라졌던 경남 최초의 영화감독인 강호 감독과 ‘리버티 뉘우스’의 자취를 만나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분명히 경남이 한국영화의 메카라는 사실이다. 상남영화제작소와 함께, 비록 KAPF 출신으로 소외됐지만 너무도 확실한 강호 감독의 영화활동이 기록과 증언도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일제에 항거하며 독립을 찾고자 애쓰던 사람들은 다 민족주의자였다. 한발 나가서, 지독한 ‘짜르체제’를 무너지게 한 러시아혁명의 사회주의를 배운다면, 일제에서 독립할 방법을 찾게 될 거라고 믿은 식자들도 많았다. 바로 그들 중에 강호 감독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 징용자들의 한이 서린 일본의 근대 시설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을 사상 처음으로 인정하면서 한일 간의 막판 합의가 이뤄진 결과다. 물론 되고 나니 일본은 딴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강제노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는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지워도 남는 것이 역사다. 강호 감독이 비록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달랐다 해도, 살았던 시대적 상황도 달랐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가 경남에 살았고 활동한 흔적은 지울 수 없다. 승자의 기록이 역사라고 하지만, 패자의 역사도 받아들이고 끌어안을 수 있어야 진정한 승자다. 각 지방자치 단체마다 문화관광도시를 부르짖는다. 상남영화제작소와 강호 감독의 발견은 경남이 한국영화의 메카이자, 동양의 작은 할리우드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다.

 영화 한 편을 잘 만들어 세계시장에 내놓는 일이 자동차 몇만 대 수출하는 것보다 더 값어치 있다고 마케팅 전략가들은 말한다. 이제 한국인의 DNA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근거를 경남에서 찾아냈다. 경남도민이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영화의 메카, 동양의 할리우드가 눈앞에 있다.

 창조경제는 마음먹기와 관점 바꾸기가 관건이다. 어쩌면 창조경제의 가장 큰 성과물이 눈앞에 있는 것 아닐까. 도민들이 준비하고 만들면서 즐기고, 국내외 관광객을 불러들여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영화산업의 뿌리를 우리가 갖고 있다. 놓치면 후회막급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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