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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년 거슬러 맞닿은 사랑 이야기
461년 거슬러 맞닿은 사랑 이야기
  • 박춘국
  • 승인 2015.06.16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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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춘국 논설위원
 최근 중국에서 유람선 침몰사고로 아내를 잃은 우젠창(五建强ㆍ58)씨의 안타까운 사연이 화제다. 이들이 탑승한 ‘둥팡즈싱’(東方之星ㆍ동방의 별) 유람선은 지난 1일 밤 비바람을 맞아 침몰했다. 선실에서 비바람 속에 배가 흔들리는 것을 느낀 아내 리슈전(李秀珍ㆍ57)이 남편을 잡아끌었고 그런 찰나, 갑자기 배가 기울더니 침대가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강물이 선실로 밀려들었고 우씨는 아내의 두 손을 꼭 잡고 놓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배가 갈수록 크게 기울면서 아내는 침대에 깔리고 말았다. 이 배에서 어떻게든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한 우씨는 사력을 다해 아내를 끌어내려고 했지만 이미 차오른 물 때문에 소용이 없었다. 함께 탈출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 아내는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손을 놓아달라고. 우씨는 순간 머리가 ‘멍’해지면서 손에도 힘이 풀렸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미 큰 물줄기가 자신의 몸을 띄우고 있었고 창문을 깨고 혼자라도 배에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의 눈앞에 있던 유람선은 한순간에 완전히 뒤집히고 말았다. 우씨는 “배가 기울기 시작할 때부터 완전히 뒤집히기까지 1∼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당시의 긴박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10여 분을 헤엄쳐 사력을 다해 뭍으로 기어 나왔고 마침 근처를 지나던 화물선을 발견해 구조됐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아내가 손을 놓으라고 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쯔(揚子)강을 지나다가 전복된 둥팡즈싱 승객 456명 가운데 구조된 사람은 14명이고 지난 9일까지 415구의 시신이 수습됐다. 아내 리슈전은 남편을 살리기 위해 손을 놓으라고 했고 자신은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 역사에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뒤로하고 젊은 과부의 인생을 위해 며느리를 고의로 내쫓은 시아버지가 있다. 퇴계 이황선생의 둘째 아들 이채는 혼인을 하고 자식을 남기지 않은 채 요절했다. 퇴계의 집으로 들어온 며느리는 별당에 혼자 살고 있었다. 퇴계는 밤이 깊어지면 별당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며느리가 잘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어느 봄날 밤. 퇴계는 며느리 방에 불이 환하게 켜진 것을 발견했다. 방안에서는 도란도란 정답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호지 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니, 과부 며느리가 방 한가운데에 허수아비를 하나 세워두고 마주 앉아 마치 살아 있는 남편을 대하듯이 이 음식 저 음식을 권해가면서, “이 음식도 좀 드셔보세요. 이것도 당신 위해 제가 손수 만든 음식이니까 한번 잡숴보세요” 혼잣말로 속삭이고 있었다.

 며칠 뒤 퇴계는 사돈에게 기별해 과부 며느리를 친정으로 데려가도록 했다. 수년이 흐른 뒤 퇴계가 서울로 향하는 길에 날이 어두워 산속에 있는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됐다. 그런데 밥상을 받아보니, 신기하게도 모든 음식이 평소 퇴계가 즐겨 먹던 것들이었다. 다음날 아침 길을 떠나려고 하자 주인집 아낙네가 하인을 시켜 버선 한 켤레를 건네주었다. 신어보니 신기할 정도로 발에 꼭 맞았다. 한참을 오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 한 아낙네가 담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퇴계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퇴계가 재가한 며느리를 재면 한 이야기는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다. 다만 1554년 퇴계가 아들 이준에게 보낸 편지에는 “둘째 며느리의 친정어머니에게 통보하여 개가하게 하여라”고 당부한 내용이 담겨있다. 며느리의 재가를 허락해준 퇴계는 당대 최고의 유학자다. 그 시절은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시대로 ‘열녀불경이부(烈女不更二夫)’라 하여 여성은 두 지아비를 섬길 수 없다는 재혼금지 정책이 시행되고 있었다. 당대 최고 유학자 퇴계가 며느리 재가를 허락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심을 했을까. 체면 보다 자식과 며느리에 대한 더 큰 사랑이 무었인지를 몸소 실천한 진정한 지식인 퇴계의 삶이 오늘에 더 큰 빛을 발하고 있다.

 양쯔강을 지나다 전복된 둥팡즈싱에서 차갑게 죽었을 리슈전의 남편사랑과 홀로된 청상과부를 재가시킨 퇴계의 며느리 사랑은 461년을 거슬러 ‘사랑’이란 이름으로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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