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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날 되새긴 퇴계 아내사랑
부부의 날 되새긴 퇴계 아내사랑
  • 박춘국
  • 승인 2015.05.21 2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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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춘국 논설위원
조선 중기 대학자 이황의 호 퇴계(退溪)는 부인 권씨의 묘소 주위를 흐르는 토계(兎溪)천에서 따왔다. 퇴계의 호는 아내 사랑에서 지어졌다고 봐야 한다. 그의 부부애는 500여 년을 관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강한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5월 21일은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을 담은 부부의 날이다. 1995년 5월 21일 세계최초로 창원에서 권재도 목사 부부에 의해 시작, 기독교를 중심으로 기념일 제정운동이 전개됐다. 2003년 12월 1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법정 기념일이 된 부부의 날의 취지는 부부의 의미를 되새기고 부부가 중심이고 나라의 근간인 가정을 지키자는 데 있다. 부부애는 남편은 아내를 사랑으로 감싸주고 아내 또한 남편을 애정으로 지켜가는 것이 시작이다.

 권재도 목사는 1995년 어린이날 “우리 엄마ㆍ아빠가 함께 사는 게 소원이에요”라는 한 어린이의 TV 인터뷰를 보며 충격을 받아 ‘부부의 날’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권 목사의 시작은 시간을 초월해 퇴계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와 맞닿아 있어 보인다.

 퇴계를 기록한 책들에 따르면 퇴계는 동갑내기 첫째 부인 허씨가 아들 둘을 남겨놓고 눈을 감자 삼년상을 치른 뒤 서른의 나이로 권씨 부인과 두 번째 결혼을 했다. 퇴계는 재혼한 아내가 정신장애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였고 그런 아내를 끔찍이 여긴 애처가였다.

 조부의 제사상을 차리느라 모두가 분주한 가운데 상 위에서 배가 하나 떨어졌다. 그러자 권씨 부인은 재빨리 배를 집어 치마 속에 숨겼고 이를 본 큰 형수가 동서를 나무랐다. “이보게, 동서! 제사상을 차리는데 과일이 떨어진 것은 우리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네. 그런데 그것을 치마 속에 감추면 어찌하겠단 말인가” 퇴계는 형수에게 “죄송합니다. 앞으로 제가 잘 가르치겠습니다. 그리고 손자며느리의 잘못이나, 돌아가신 조부께서도 귀엽게 보시고 화를 내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라고 사태를 수습했다. 제사를 마친 뒤 권씨 부인에게 치마 속에 배를 숨긴 이유를 물어 배가 먹고 싶어서 숨겼다고 하자, 퇴계는 치마 속에 감춘 배를 달라고 한 뒤 손수 껍질을 깎아 잘라 줬다.

 퇴계의 아내 사랑을 보여준 또 하나의 일화는 퇴계가 상가에 문상을 가기 위해 도포를 입으려다 자락이 너덜너덜하게 닳아 해진 것을 발견하고 권씨 부인에게 꿰매달라고 하자 권씨는 빨간 헝겊으로 기워줬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도포를 입고 상가에 도착한 퇴계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원래 흰 도포는 빨간 헝겊으로 기워야 합니까?”라고 물으니, 그는 “붉은색은 잡귀를 쫓고 복을 부르는 것이라 우리 부인이 좋은 일이 생기라고 해준 것이라네”라고 답했다.

 퇴계는 항상 부인의 잘못을 탓하지 않고 사랑과 배려로 감싸주며 살았다. 재혼 16년만인 1546년 권씨가 첫아이를 낳다가 변을 당하자 그는 전처소생 두 아들들에게 친어머니와 같이 시묘살이를 시켰고 자신도 권씨 묘소 건너편 바위 곁에 양진암을 짓고 1년 넘게 머무르면서 아내의 넋을 위로해줬다. 그리고 양진암 주위를 흐르는 개천 토계의 토(兎)를 퇴(退)로 고치고 자신의 호로 삼았다.

 300여 명의 제자를 둔 대유학자 퇴계는 제자들에게 “군자의 도는 부부에게서 시작된다”고 가르쳤다.

 퇴계의 제자 이함형은 부인과 금슬이 좋지 않아 혼인을 하고도 동침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고향에 가는 날 퇴계는 아래의 내용을 담아 편지를 건넸다.

 공자가 이르기를 ‘천지가 있은 뒤에 만물이 있고 만물이 있은 뒤에 부부가 있고 부부가 있은 뒤에 군신이 있고 군신이 있은 뒤에 예절과 의리를 둘 곳이 있다고 했고 자사는 군자의 도는 부부에서 시작되며 그 지극함에 이르면 천지에 드러난다고 하셨다. 부부의 인륜이 이토록 소중하거늘 어찌 정이 흡족하지 않다고 해서 멀리할 수 있겠는가? -중략- 그대가 부부 금슬이 좋지 않아 한탄한다 하니, 어쩌다 불행이 있게 됐는지 모르겠다. -중략- 남편 된 사람이 반성하고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고 노력해 올바르게 처신하기에 달렸으니, 부부의 도리를 잃지 않는다면 대륜이 무너지는 데 이르지 않을 것이요’

 스승의 편지를 읽은 이함형은 부인과 금슬 좋은 사이가 됐고 후손도 번성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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