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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유착 후폭풍
정경유착 후폭풍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5.04.19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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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근 본사 전무이사
 아이스킬로스(BC 525~426), 그는 소포클레스(BC 496~406), 에우리피데스(BC 484~406)와 함께 아테네 3대 비극(悲劇) 작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전과를 올린 그의 비문(碑文)에는 전쟁무용담도 적지 않지만 압권은 ‘죽은 자가 산 자를 살해한다’는 글귀다.

 지금 한국의 정치판은 죽은 자가 뒤흔들고 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하면서 남긴 메모 55자(字)에는 현 정부 실세들과의 돈거래를 암시했고 또 다른 정치권의 판도라 상자가 드러날 조짐도 있다. 이처럼 정치인들에게 ‘돈’은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달콤한 속삭임과 다를 바 없다.

 특히 우리 정치사가 정경유착의 결정판이어서 여의도 정가(政街)는 늘 ‘돈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화약고였기에 리스트는 산 자를 향한 정조준이었고 또 다른 불똥이 언제 터질지 몰라 항시 긴장감이 흐르기도 했다.

 ‘정경유착(政經癒着)’,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에는 수천억 원대의 검은돈 거래가 드러났다.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 때도 특권층 간의 정경유착의 고리는 여전했다. 최근 들어 대표적 정경유착 사례는 1997년 한보그룹 부도사태였고 ‘박연차 게이트’로 불린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비리 의혹은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만 남겼다. 현재 정경유착을 근절하기 위한 다양한 법과 제도를 만들었지만 별 효과가 없는 게 현실이다. 역대 어느 정권할 것 없이 불거져 나와 국민들도 당연시할 정도다.

 정치권력과 기업이 불건전하게 공생하는 정경유착은 우리나라 산업화 태동기부터 시작됐다. 당시 변변한 자본이나 기술력이 없다 보니 상당수 기업들이 정권의 비호 아래 성장하는 것이 지름길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동안 한국 정치는 무소불위의 특권지대였다. 최고의 파워그룹이고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는 예외지대였다. 이 같은 독주는 입법독재를 낳았고 이제 정치는 더 이상 자발적 개혁이 불가능한 상황에까지 왔다. 지난 총선, 대선 때 각종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약속도 헌신짝 버리듯 했다. 정치는 스스로를 개혁할 능력을 상실해 버렸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특히 이번 ‘리스트’를 통해 수십 년 구태 정치의 민얼굴이 또다시 드러났다는 것이다. 충격이 큰 것은 총리, 전ㆍ현직 대통령 비서실장, 도지사ㆍ시장 등 정권의 핵심 실세들이 망라돼 있어 사실 여부에 따라 그 어느 정권 때보다 파장이 커질 수 있다.

 ‘손볼 사람’ 리스트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뒤 일각에선 동정하는 분위기도 있다. 또 그가 펼친 장학사업과 지역발전 기여도 등을 감안하면 그의 죽음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칠 정도로 동정적이거나 온정적이 되면 사태를 그르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성 회장은 정치에 줄을 대고 스스로도 정치와 기업을 오가며 정경유착형 사업을 하다 몰락한 기업인이었다. 권력에 기대어 기업을 키우고 지킨 그가 ‘반기문 대망론’을 주도했다면 무슨 목적인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억울한 희생양이라 하기 어렵지만 메모, 비망록 등 유언같이 남긴 모든 게 ‘살생부(殺生簿)’나 마찬가지여서 사실관계는 밝혀져야 한다. 하지만 개연성이 있다고 해서 그게 곧 진실일 수도 없다.

 이번 메모 건도 급성장과 몰락이란 점에서 정경유착의 사례로 보이지만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사실까지 뒤엉켜 심각성이 도를 넘고 있다. 문제는 사실관계를 메모만으로 파악할 수도 없고 통화내용이 모두 진실이라고 믿을 수도 없다. 경남기업관계자들이 회의 중 녹취록도 거액의 회사자금을 불법으로 빼낸 부실 기업인의 주장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연성은 충분하다는 점에서 검찰이 수사로 각종 의혹을 끝까지 추적, 하나하나 밝혀내기를 기대한다.

 특히 ‘리스트 공포’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지만 손볼 사람에 이어 의리 남(男)이 거론될 정도라면 ‘죽은 자가 산자’를 살해하기에 앞서 진실은 더욱 명명백백하게 가려져야 한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해한다지만 2009년, 유서를 남긴 연예인 리스트에 대한 기억은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자조만 남겼다. 따라서 이해 당사자가 없는 상황이고 진실공방만으로는 공염불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정치개혁을 위해 검찰 몫인 진실규명에 거는 기대는 크다. 정치는 돈을 먹고산다지만 돈이 하수분이래도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번 기회를 통해 부패의 바로미터(barometer)인 정경유착, 이젠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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