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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다
  • 김병기
  • 승인 2014.11.26 2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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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기 김해중부경찰서 유치관리팀장
 나지막한 야산 자락 끝에 아름드리 소나무 세 그루가 동서남북으로 손을 내민 넉넉한 자태를 뽐내며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기대 서 있고, 이에 뒤질세라 한낮의 열기를 제법 머금은 철쭉이 열병식 줄 맞춘 병사처럼 타원형을 이루고 잘도 섰다. 농로를 지나 제방 길을 따라가니 어디선가 나름대로 무거운 기차를 떠받치던 기름 잔뜩 밴 침목이 다리가 돼 있고, 그 아래 수로에는 이름 모를 들꽃 향기가 눈을 어지럽히고 밤톨 같은 논고동 몇 마리가 연신 뻘을 내뿜으며 노닐고 있다.

 밀양시 초동면 명성리 155번지. 부산동아대학교병원에서 루게릭병으로 투병생활을 하고 계시는 당숙께서 후손들을 위해 뜻을 내 조성해 놓은 가족묘원이 들어선 곳이다. 다리를 건너면 제일 먼저 눈에 확 들어오는 안내문이 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을 손상하지 않음이 효의 시작이요. 몸을 세워 예를 행하고 후세에 이름을 알려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효의 끝이라. (중략) 가슴 한 곳에 담아두고 좋은 기억, 아름다운 추억을 기억하며 남아있는 자식들이 잘 지내면 먼저 간 부모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편한가. 2014년 봄에 김권식’

 또 한쪽에는 현존하는 김해 김씨 148개 분파에서 판서공파(불비) 문중 중 이곳에 들어올 당대 후손들의 명단과 아직 결혼해 일가를 이루지 못한 후대 명단이 보인다. 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은 우리로써, 묘지 조성으로 인한 산림훼손을 막고 핵가족화로 후손들이 감당해야 할 부담을 없애기 위해 처음에는 납골당 건립을 추진했다. 그렇다, 산 자는 반드시 자연으로 돌아감이 철칙이라는 섭리에 수목장을 고심했고, 급기야 외국 사례들을 살펴보고 자연장으로 방향을 전환 ‘예지원’이 조성됐다.

 오늘도 집 근처 함박산에 올랐다. 산 정상에 지역산악회에서 ‘동행’이란 글을 새긴 표지석이 자리 잡은 가운데 뒤에 묘지로 추정되는 터가 보였다. 몇해 전 올랐을 때는 분명 묘지가 있었는데 다른 곳으로 이장을 했는지 아니면 후손들이 찾지 않아 등산객 발길에 원형을 잃어버린 것인지 몰라도 묘지는 사라져 버렸다.

 함박산에서 임호산 등산로를 걷는다. 등산로 옆 옹기종기 들어선 묘지 중 봉분이 무너져 내리고 있으나 돌보는 이 없어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한때 나도 누구의 엄한 아버지였고 다정한 어머니였는데 다만 세월 따라 잊혀져 갈 뿐이라고….

 그나마 등산로를 따라 들어선 묘지 주인공은 매일 새 얼굴의 문안인사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해 복 받은 분들이지만, 봉분 위에 실한 떡갈나무가 둥지를 틀고 잡초 우거진 월령 안을 쳐다보며 길한 터를 잡지 못한 처지 안타까워 풍수사 된다. 좌청룡 우백호에 북현무 남주작 기운이 뻗친 길지가 아닐지라도 예지원은 같은 일족끼리 있어 외롭지 않고 언제든 만날 수 있어 좋다. 밀양에 가면 한 번쯤 예지원을 들러 보시라. 그리해 이 땅 곳곳 제2, 제3의 예지원에 봄이면 진달래 술 빚어 노닐고, 가을 어스레한 달밤에 스산한 귀뚜라미 울음으로 조상님 음덕도 기리며 국화주 한 잔 올리는 재미 또한 쏠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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