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3 21:30 (토)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11.19 2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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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60)
 207. 제일고등학교 소요

 1959년 당시 맞춤양복집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빚을 내 대구에서 제일모직 원단 100벌을 사와 삼천포에서 월부 신사복을 하셨다. 지금에야 양복 한 벌 얼마 안 하지만 기성복이 없던 그 시절 양복은 재산 목록에 될 정도로 귀했다. 양복을 입고 다니다가 돈이 급하면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려 쓰기도 하고, 술집에서 술값이 모자라면 옷을 돈 대신 맡기기도 했다.

 지금 가치로 치면 고급 양복점에서 제일모직 맞춤복은 지금 돈으로 100만 원 정도 될 성 싶다. 지금도 월부 양복업은 쉬운 일이 아닌데 가난한 시절 그런 고급 옷을 월부로 지어 줬으니…. 사업은 아버지 뜻대로 순탄치 않았다. 생돈으로 옷을 해 입는 사람은 드물었고 외상으로 옷을 해간 사람은 돈을 갚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집 생활은 점점 기울어졌고 나중에는 나의 중학교 월사금마저 밀리게 됐다.

 그래서 삼천포중학교를 졸업했지만, 밀린 월사금 때문에 삼천포고등학교는 입학을 못 하고 새로 생긴 공립학교인 제일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공립이라 더 좋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막상 입학하고 보니 소문과는 달랐다. 교실은 아직 신축하지도 않았고 임시로 부둣가에 있는 넓은 창고를 빌려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몇 달 공부하게 됐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학생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운영위원장이 무슨 부정이 있었다면서 “사실을 밝혀라”, “운영위원장은 물러가라” 등을 외치며 소요가 일어났다. 당시 제일고 운영위원장은 손정섭(가명)이라는 분인데 우리 집에서 대각선으로 30m쯤에 있는 이층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주도하는 학생은 나보다 한 살 위인데 학교생활을 제대로 못 해 나와 같은 학번이 된 김성민(가명)이다. 그는 중학생 시절부터 불량해 호주머니에는 콘돔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곤 했다. 그래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도 못할 형편인데, 운영위원장 손정섭이 그를 선처해 제일고에 다니게 한 것이다.

 그런데 사건이 터지고 보니 손정섭 위원장은 자기의 배려로 학교에 다니게 된 김성민이 자기를 쫓아내려는 주동자가 되어 있으니 기가 막혀 화가 치밀어 올랐다.

 화가 난 채 학교 강단에 올라선 손정섭 위원장은 학생들을 크게 나무라기도 하고 배은망덕한 김성민을 야단쳤다. 그 후 학교는 잠잠해졌다.

 또 한 번은 진주 학생들이 삼천포 해수욕장에서 번번이 곤욕을 치르자 트럭을 타고 쳐들어와서 삼천포 시내를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기도 했다. 그 당시는 주먹이 법보다 가깝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고 웬만한 학생들은 찐줄(자전거 바퀴줄)이나 아이쿠치(손칼) 등을 가지고 다녔다.

 나는 다니는 학교가 면학의 분위기가 되지 않아 학업을 포기하고 만화가의 길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한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학교 공부보다는 만화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는 내 말에 일리가 있었는지 동조해주신다. 그러나 그때는 삼천포는 그림공부를 할 수 있는 학원 같은 곳이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궁리 끝에 삼천포 극장 미술부에 나를 소개해 극장에 다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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