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11.1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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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56)
 203. 춤추는 위작

 1960년대 초기 프로 레슬링이 유행했다. 레슬링계를 이끌어가는 스타 선수 장영철 선수를 위시해 천규덕 선수 등이 있었다. 이들이 일본 선수와 장춘 체육관에서 경기를 할 때는 다방이나 음식점, 인정 많은 부잣집에서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함께 TV를 봤다. 그때 TV를 놓고 영업하는 곳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손님들로 붐볐다.

 그 무렵 진흥 출판사에서는 ‘향수’가 일본 요시다 다츠오의 레슬링 만화를 개작해 만든 ‘챔피온 쟁탈전’이라는 작품을 출간했는데, 이 작품이 대히트를 하게 된다. 그 이후 향수는 제작한 작품마다 인기를 얻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치 있는 필명으로 우뚝서게 된다. 그리고 향수의 이극한과 같이 다니는 친구 허정길(가명)도 이극한의 방식을 따라 ‘현수’라는 필명을 만들고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재진이라는 청년에게 원고를 제작시켜 출판했는데, 이 필명도 출판사가 손해를 입지 않을 정도로 책이 팔려 자리를 잡게 된다.

 그리고 성인 만화 잡지에 간간이 이름을 올리던 임종우라는 작가가 ‘임창’이라는 필명으로 대여점용 단행본을 출간하면서 자리를 잡게 되고, 나중에는 영향력있는 작가가 된다.

 필명 임창도 임수 선생님의 이름을 따온 것일까? 필명을 지을 때 임수 선생님을 의식하고 ‘임’자를 넣었는지, 우연인지는 본인밖에 모를 것이다. 나중에 임창 선생님 아류 작가로 하청, 하룡 등이 등장하기도 한다.

 향수 팀의 그림은 거진 이동호라는 청년이 맡았고, 이극한은 출판사에 원고를 들고 가거나 원고료를 받아 팀에게 나눠주거나, 또는 다음 작품의 소재를 구하기 위해 일본책을 구하러 다니는 일을 했다.

 향수가 인기를 얻자 다른 출판사에서 필명을 계속 노렸고, 당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조력자들은 나이가 들면서 필명을 자기몫으로 하려는 움직임이 생겼다. 그래서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은 필명으로 두 곳의 출판사에 거래하는 사태도 생겨 다툼이 치열해 지기도 했다.

 향수의 조력자들이 자작을 하기 위해 한둘씩 나가면서 반삽화 만화체는 급속하게 퍼져나간다.

 ‘임수’ 선생님의 외자 이름을 본따 향수, 향원, 현수, 유성, 임창, 하룡, 하청, 강철 등의 필명이 있었다. 외자 이름과 반삽화 만화체는 여러갈래로 퍼져 나갔고 한국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 후 한국일보와 신촌의 한바탕 혈전이 끝난 후 만화계는 한국만화협회 중심으로 사이비 작가 철퇴가 내려지면서 정리가 되어 갔다.

 ‘향수’라는 필명으로 많은 작품을 하던 이동호는 ‘향원’이라는 필명으로 새출발을 했지만, 협회에서 외자 이름을 쓰지 못하게 하는 탓에 ‘이향원’으로 바꾸고, 또 향수 팀에서 나와 ‘강철’이라는 필명으로 자작을 시작하던 작가는 필명을 ‘강철수’로 바꾼다.

 그리고 이극한은 필명을 ‘유성’으로 바꾸며 재기를 노렸지만, 재대로 하지못하고 고향 부산으로 내려가게 된다. ‘현수’의 필명은 이재진으로 바뀐다.

 그리고 임창 선생님은 필명이 외자이지만 사이비가 아닌 것이 확인돼 필명을 그대로 사용되게 된다. 임창 선생님의 아류 작가 하청은 ‘하고명’으로 필명을 바꾼다. 이렇게해 한때 난잡했던 아류작 시대는 서서히 정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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