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3:48 (토)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11.1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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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53)
 한국 전쟁사에서 김포와 강화지역은 중요한 지역이다. 대몽골 항쟁, 병인 신미양요 등 수도를 지키는 관문으로써 민족의 고난을 함께해 왔다. 또 6ㆍ25전쟁 발발 때 수도를 뺏기고 다시 탈환하기 위해 인천 상륙 작전의 기획을 한 곳이기도 하다.

 아군은 수도 서울을 탈환해 북진했고, 서부전선에서는 중공군들과 미군 사이에 접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영의가 소속된 선무 부대 미술팀 1조는 야심한 밤, 호위병 5명과 함께 30여 장의 그림을 가지고 적방으로 향한다. 엔진을 끈 채 노를 저어 보트를 움직였다. 육지에 닿자 일행은 개성으로 향한다. 멀리 도롯가에 가로등만 옅게 보일 뿐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한참 가다 보니 멀리서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 온다. 남쪽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개성 시내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사람을 피해 다녀야했다. 호위병들이 20m 전방에서 앞을 살피다가 인적이 없으면 손짓을 한다. 그때 선무 부대원들이 달려가서 벽에다 그림을 붙인다. 인민군 차림의 사람이 보이면 대원들은 행동을 멈추고 어둠에 몸을 숨겼다가 그들이 사라지고 난 후에 다시 그림을 붙였다.

 부대에서 출발한 시간은 밤 9시쯤이지만 다음 날 동이 틀 무렵이 돼서야 가져간 그림을 다 붙이곤 했다.

 어느 날도 한참 정신없이 그림을 붙이고 있는데, 갑자기 중공군 순찰병이 나타나 총을 겨누면서 “너희들 뭘 하는 것이냐”하고 고함을 질렀다. 순간 호위병이 재빨리 총을 쏴 순찰병을 쓰러트렸다. 이 총소리를 듣고 멀리 있는 순찰병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대원들은 그림은 팽개치고 총만 들고 달려드는 적을 향해 쏘면서 후퇴했다.

 이처럼 다급한 상황이 종종 생겼고, 사상자가 발생하고는 했다.

 그때마다 우경희는 대원을 모아놓고 “심리전에서는 그림, 특히 만화는 아주 중요하다. 장소를 불문하고 붙일 수 있는 데까지 붙여야 한다”하며 격려했다. 그는 1년 전 만화를 비하하던 때와는 달랐다. 그 덕에 영의는 더욱 힘을 얻을 수 있었다.

 1951년 9월 25일 밤, 강화도에 주둔해 있던 5816 유격대는 개풍군 해창포에 상륙해 해안을 경비하던 중공군을 섬멸하고 풍덕리까지 진군하게 된다.

 그러나 낮이 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파악도 할 수 없는 적이 사방에서 나타나 아군을 공격했다. 그 바람에 아군은 다시 해창포까지 밀려오게 된다. 지휘관들은 적의 포진에 당황해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 무렵 늦은 밤, 영의가 소속된 선무 부대가 적의 마을 곳곳에 그림을 붙이고 있는데, 그 앞에서 중공군 병사 한 명의 모습이 슬쩍 보였다. 대원들은 놀라 총을 쏠 겨를도 없이 몸을 납작 엎드렸다. 그리고 앞을 향해 총을 겨눈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나 방금 보였던 중공군은 보이질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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