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4:52 (토)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10.09 21: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억의 삼천포 시절(231)
 182. 어머니의 향수병

 아침 일찍 길을 떠난 덕철이 형 어머니는 서쪽이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미국의 서부 캘리포니아의 한적한 도시, 해가 떠있고 길가에 사람들이 많이 지나 다닐 적에는 아무도 길을 걷고 있는 이상한 복장의 동양인 할머니를 눈여겨 보지 않았다.

 프레지노는 자그마한 도시인데도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해는 중천에 있고 이제 지쳐서 길가에 주저앉아 가져온 도시락도 꺼내 먹으면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머니에게 이상한 것은 방금 전에 왔던 곳인데 또다시 그 길이 나오곤 했다. 귀신에게 홀린 것인가.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똑바로 가는데도 또 왔던 곳이 나오곤 했다. 그래서 길을 잘못가고 있는 것 같아 이번에는 다른 길로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걷고 걸어도 삼천포는 나오지 않고 방금 왔던 그곳이 나오곤 했다.

 그렇게 힘들게 돌다 보니 그만 해가 서쪽의 큰 빌딩에 걸리고 만다. 해가 지기 전에 가야 하는데 삼천포는 안보인다 .

 아니 진주도 안보인다. 진주라도 나오면 그때는 버스라도 타고 삼천포에 갈 수 있는데, 마음은 점점 조급해진다. 어머니의 그림자는 땅바닥에 길게 그려지고 점점 날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그때 순경인듯한 코쟁이가 어머니 앞을 가로막으면서 뭐라고 지껄인다. 어머니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순경은 전화통화로 누군가를 부르는 것 같았고, 조금 후에 한 동양인이 순경 앞에 나타났다.

 그 동양인은 어머니에게 “할머니 지금 어디 가셔요”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한국 말을 하는 사람이 너무 반가워 “당신도 한국인이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자기도 청년에는 한국에서 살았는데, 지금은 미국 사람이 돼 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나는 아들을 따라 미국까지 왔지만, 미국이 살기 싫어 고향 대한민국 삼천포로 간다”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한국을 가려면 비행기를 타고 가야지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난 비행기 탈 줄을 몰라 힘들어도 그냥 걸어서 간다”고 했다.

 그 말에 순경은 할머니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것으로 판단돼 경찰서로 모셔 보호하기로 한다.

 덕철이 형은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어디로 가고 없고 빈집이었다. 놀란 덕철이 형은 이웃에 가서 어머니 사정을 물어봤지만 오늘 낮부터 어머니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덕철 형은 경찰서로 가서 어머니 실종 신고를 하게 된다.

 하룻밤을 자고 새벽녘에 덕철이 형에게 경찰서에서 어머니를 보호하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셔가서 진찰을 받아보라고 했다.

 어머니를 모셔온 덕철이 형은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은 결과 어머니가 심각하게 향수병에 걸렸다고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