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0:49 (토)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8.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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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205)

 아저씨 얼굴은 피부가 여기저기 흉하게 일그러져 아저씨 원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인사를 해야 하는 데, 아저씨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인사를 하지 못 하고 일그러진 얼굴 모습만 쳐다보고만 있었다.

 아저씨는 나에게 인사를 받을 채비를 하다가 내가 인사를 하지 못 하고 얼굴만 쳐다보고 있으니, 민망한지 그냥 내 앞을 스쳐 지나가신다.

 멍한 상태로 있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그런 아저씨에게라도 인사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데 이미 아저씨는 세탁소 안으로 들어가 버린 후였다.

 나는 그때 그런 아저씨에게 인사를 못한 것이 크게 후회스러웠다. 아저씨는 인사도 못하고 자기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던 나를 보고는 ‘자기 처지가 얼마나 비관 스러웠을까?’하는 생각을 하면 그 아저씨에게 두고두고 미안한 생각이 들곤 한다.

 그 후 몇 달 후 그 아저씨는 삼천포의 2층집을 정리하고 고향 통영으로 돌아가셨다. ‘얼굴 없는 모습으로 어떻게 사셨을까’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 부디 마음 편하게 잡수시고, 용감하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158. 객지 소년 영호

 로터리 동네 아이들 가정은 모두들 한곳에서 10년 이상 살고 있는 토박이 가정들이다.

 그래서 나는 중학교 들어갈 적까지도 세상 사람들은 모두 집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 국어 책 내용 중에서 서울에는 집 없이 사는 사람이 절반이나 된다고 해 놀라곤 했다. 그때 나는 집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로터리 동네는 집집마다 방이 남아돌아도 남에게 세를 주지 않아 동네에는 객지 사람을 찾아보기가 드물었다.

 그러나 우리 집과 대각 쪽으로 있는 재식이네 집에서 종종 방 하나를 빌려줘 객지 사람이 살다가 가곤 했다.

 그런 어느 날 우리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집 점포 쪽의 문이 열리더니 초등학교 고학년 또래의 한 소년이 옷 보따리를 들고 들어오는 것이다. 소년은 아버지에게 “우리 아버지가 아저씨께 갖다 달라고 해 가지고 왔습니다”하고 옷 보따리를 아버지 앞에 내려놓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때 소년은 서울 말씨를 쓰고 있었고 또 얼굴에 옅은 화장을 한 것 같았다.

 이 소년의 아버지는 양복 기술자였다. 원래는 서울에서 살았지만 부산을 거쳐 삼천포로 와서 재식이네에 방을 얻고 또 우리 아버지가 일감을 대주면 그것을 집에서 마무리해 아버지에게 갖다 주고는 했다.

 소년의 아버지는 젊었을 때 돈을 많이 벌어 기생집에 들락거렸는데, 그때 기생을 사귀어 결혼까지 한 후 두 부부는 객지 생활을 하고 있다. 소년의 어머니는 젊었을 적에는 요정에서 장구도 치고 춤도 추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30세를 훨씬 넘겨 퇴기가 돼 가정에서 살림만 하고 사는 데도 화장을 짙게 하고 옷은 늘 깨끗한 치마저고리를 정결하게 입고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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