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3:42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8.17 2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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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97)
 장철이 인민군의 총알 사이로 송충식에게 다가가자, 송충식은 서류를 장철에게 건네주면서 비통한 얼굴로 “장형, 그동안 고마웠어. 이곳은 나에게 맡기고 어서 서류를 가지고 귀대하시오”라고 말한다. 장철은 송충식의 이런 모습에 눈물이 차올랐다. 자기가 그대로 가버리면 송충식은 인민군에게 죽음을 면치 못 할 것이다.

 그를 두고 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잠시라도 시간을 지체하면 임무 불이행은 물론 두 사람 다 당할 것이 뻔하다. 그래서 장철은 송충식이 건네준 서류를 받아 쥐고 “고마워, 전우야 안녕”이라며 인사를 던지고 강가로 뛰기 시작했다.

 인민군은 이들 앞까지 왔다. 그때 송충식은 마지막 힘을 다해 들고 있는 기관총의 방아쇠를 힘껏 당긴다. ‘두두두두두’ 충식은 자기 몸에 총알이 박히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 인민군들은 충식의 총격에 이리저리 쓰러졌고 더 이상 진격을 못했다.

 그 틈에 장철은 강가에 다다랐다. 그러나 강물에 들어가기도 전에 배가 물살을 가르고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강물이 허리춤까지 차는 곳에서 기다려야 하는 데 늦은 것이다.

 그러나 배를 그대로 보낼 수 없었다. 장철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미국 서부의 카우보이가 소몰이를 하는 식으로 밧줄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다가, 배가 옆으로 가까워지자 밧줄을 힘껏 던졌다.

 밧줄은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서 갈퀴로 배의 옆구리를 정확하게 움켜쥐었다.

 이때 밧줄은 순식간에 당겨졌고 그 끝을 잡고 있던 장철을 사정없이 낚아챘다. 장철은 공중으로 10m 튕겨 올랐다가 강에 내팽개쳐졌다. 정철은 온몸이 으스러지는 고통을 느끼곤 정신을 잃을 뻔했지만, 밧줄과 서류를 가슴에 안고 강물을 가르며 배에 끌려가고 있다.

 멀어지는 강가에서 인민군이 몰려오더니 배를 향해 총을 쏘아 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들은 이제 까마득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장철은 배에 올라타야 하는데 힘이 없어 밧줄을 당기질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손에 힘이 점점 빠져 이제 밧줄을 잡고 있을 수도 없었다.

 놓으면 끝장이다. 어딘지도 모르는 강 안에서 버틸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밧줄을 잡고 있는 손에 손목을 돌려 밧줄을 감기 시작했다. 손목에 밧줄을 7~8번 감자 손에 힘을 줄여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밧줄이 장철을 끌고 강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 번씩 출렁거리는 강물에 고통이 밀려왔지만 이를 꽉 깨물고 참아냈고 그러길 10여 분, 장철은 몽롱해지는 정신을 차리고 강가를 주시했다. 그때 마침 강가에서 아군이 보내는 신호가 보였다.

 그것을 목격하고 장철은 손목에 감고 있는 밧줄을 풀고 배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강가로 헤쳐나가는 순간 정신을 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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