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2:35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7.27 2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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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83)
 142. 풍류의 시절

 박기정 선생님은 한국일보의 출판사업 기획부터 자리를 잡기까지 늘 옆에서 조언했다. 그 덕에 한국일보 출판국은 자리를 잡으면서 별관을 따로 지어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흑자를 보는지 한국일보 내에서 출판국을 `돈국`이라고 부르곤 했다.

 당시 선생님은 많은 작가와 어울렸다. 처음에는 업무 때문이었지만, 그렇게 만난 후에는 주로 술집으로 향했다.

 1960년 말과 1970년 초, 술집 문화는 니나노집이라 부르는 방석집이 있었고, 또 양장을 한 아가씨가 손님을 접대하고 맥주와 양주를 파는 바룒Bar)가 있었다.

 당시 신촌역 주위의 니나노집이나, 안국동 일대의 바에는 주 고객층이 만화가와 한국일보 편집국 직원들이었다.

 그만큼 그때는 다른 업종보다 만화시장이 컸다. 이때 만화 판은 한국일보의 출판사업 출범으로 고참 작가들은 서서히 인기가 시들어가고 있었고, 신인들이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러니 박기정 선생님과 어울려 다니는 또래의 나이 드신 작가들은 변변한 돈벌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슨 모임이다, 회의다 하면서 자주 모였고, 그 끝에는 술을 한 잔씩 하고 계산은 항상 선생님 몫이었다.

 하루는 조금 중요한 회의를 했고, 그날은 조금 고급인 바로 몰려가 아가씨를 불러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시간이 지난 후 모두 비틀거리면서 일어선다.

 거하게 한 잔 마신 박기정 선생님은 카운터에서 술값을 계산하며 자기 파트너였던 아가씨에게 지폐 한 장을 주었는데, 문제는 다른 아가씨들이었다.

 모두들 술대접을 잘 받았으면 팁 정도는 줘도 될 텐데, 그냥 나갈 참이다. 선생님은 동료들의 태도가 맘에 안들었고 기분이 조금 상했다. 동료들은 박기정 선생님에게 "미안해, 박 선생"하면서 밖으로 나가 버린다. 할 수 없이 선생님은 지폐를 아가씨 수만큼 꺼내 땅바닥에 뿌려 버렸다. 팁을 못 받을까 조바심을 내던 아가씨들은 함성을 지르며 돈을 챙겼다.

 또 한 번은 답십리 쪽에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옥류정`이란 니나노집이 있는데, 선생님과 7~8명의 동료가 아가씨를 불러 판을 벌였다. 한참 어울려 놀다 보니 밤 12시 통금 시간이 다가왔지만, 기분이 좋아 밤을 새우기로 한다. 새벽이 되자 모두 이리저리 쓰러져 밤을 보냈다.

 그 다음 날 선생님은 신문사에 출근 때문에 일찍 일어나서 주인에게 술값을 적당히 지불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퇴근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옥류정으로 향했다.

 아직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기가 찼다. 어제 동료 중 없는 사람도 있었고, 어떻게 알고 왔는지 새로운 동료도 있었다. 선생님은 다시 그들에게 휩쓸렸다. 다시 밤을 새우고 술값을 계산했고, 회사로 출근했다. 옥류정 술판은 그날도 끝이 나지 않았고, 그 다음 날인 사흘 만에 끝나게 된다. 그 시절 만화가들은 참 풍류가 있었다. 수입이 많은 작가는 그렇지 못한 동료들에게 한 잔 살 줄도 알았고, 얼마 되지 않은 수입으로도 니나노집에서 아가씨와 젓가락 장단을 맞추기도 했으니….

 그러던 중 선생님은 만화계의 골칫거리였던 사이비 작가 등을 척출하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분열과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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