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8:47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7.21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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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79)
 기정은 고아였다면 큰 행운이다. 그리고 기정이 나쁜 마음을 먹었더라면 신사를 이용해 금전적인 혜택을 얻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직하게 살아가는 기정은 잠시 처지가 어렵다 해서 남을 속여 혜택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기정은 신사에게 “사장님 너무 감사하지만, 저는 고아가 아닙니다. 저를 돌봐 주실 형들도 있고, 서울에는 집도 있습니다. 전쟁통에 형들이 인민군을 피해 뿔뿔이 흩어져 저 혼자 어렵게 생활하고 있지만 상황이 진정되면 서울로 올라가게 될 겁니다”라고 진솔하게 자기 처지를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신사는 끝내 서운한 기색을 보이며 “그랬구나, 내가 실례했네”라고 말하며 미리 준비했는지 하얀 봉투를 건넸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이것으로 학비도 하고 생활비에 보태 쓰거라.”

 기정은 어제 뺑뺑이에서 번 돈과 방금 외상값을 받은 것도 넉넉한데, 또 다른 봉투까지 주니 받는 것이 황송하기만 했다.

 기정은 신사에게 거듭 고맙다고 절을 하며 그 집을 나왔다. 고마운 분을 만나 어려운 생활에 큰 도움을 받은 것이다.

 138. 대박 만화 ‘도전자’

 격렬한 전쟁은 지나고 휴전으로 상황이 기울자 피난민들은 하나씩 서울로 올라가게 되고 기정도 서울로 올라와 흩어진 형들과 기준을 만나게 된다.

 박기정 선생님은 곧 1956년에 중앙일보에 ‘공주재’라는 네 컷 만화를 연재하게 되고, 비상근 고문직으로 캐리커쳐를 그린다.

 만화계는 서봉재 선생님의 ‘밀림의 왕자’가 히트했고, 다음 해에는 만화전문 잡지 ‘만화세계’가 발간되면서 만화는 붐을 일으킨다.

 동생 박기준 선생님은 신문사에서 네 컷 만화와 디자인으로 실력을 쌓아 오다가 단행본 ‘두통이’를 발간하면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러다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던 형수님이 만화출판업을 시작하신 것이다. 그때 출판한 작가로는 권영섭, 박기준, 박부성 등이다. 집안에서 제일 그림을 잘 그리는 형제는 박기정 선생님이신데 선생님이 신문사 일에만 매달려 있는 것이 안타까운지 모두들 단행본을 출간하라고 권유한다. 그래서 선생님도 뒤늦게 단행본 제작에 합류하게 된다.

 첫 작품은 순정 만화 ‘은하수’였다. 당시는 우리나라 정서가 순정 작품이 무난했던 시절이다. 외뿔 송아지, 황혼에 지다, 가고파 등 계속 순정 만화를 그렸고, 그 후 스포츠 만화에 관심을 돌리신다.

 당시 한국 정서로 일본 반항 작품이 무난할 것 같았다. 그리고 만주 용정에서의 일본 학교에 다니면서 겪은 서러움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그 이야기들은 거의 선생님의 자서전 같은 내용이었다. 같은 반의 친구의 갈등과 일본인 여학생과의 관계도 교묘하게 그려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출간하자마자 큰 인기를 얻으며 대박을 터트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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