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정해진 계획으로 전국 30여 개의 어촌마을의 취재를 진행하며 처음에는 정해진 일정 안에서 인터뷰, 사진, 글을 작업해야 하는 부담감이 더욱 커서 뒤로 한 발자국 주춤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젊음과 열정 그리고 패기가 있다면 한번 부딪쳐 보고 싶다는 욕심이 더 컸다.
어촌마을 취재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난 뒤, 우선적으로 우리나라의 지도를 구입해서 동해, 서해, 남해의 지역들을 체크했다. 우리나라 지도에 색을 입혀 선으로 연결을 해보니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지도의 모양은 우리나라를 한 바퀴 일주해야 하는 코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순간 우리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단 2명의 인원이 나누어 코스를 취재하는 것도 아니고 두 명이 한팀으로 이 작업을 시작해야 했기에 그 모든 코스를 완주하고 난 뒤, 무사히 글 작업까지 끝마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으로 또 하루를 보냈다.
언제나 어떤 힘든 상황에 마주치면 피하는 성격은 아니라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니 이번 해양수산부에서 요구하는 취재는 예상보다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주저하고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대한민국의 끝이라 할 수는 없지만 전라도 지역부터 먼저 취재를 하는 것으로 하고 우리는 첫 번째 코스로 서해의 끝자락에 있는 전라남도 목포의 북항으로 이동했다.
목포대교를 지나 북항으로 가는 길에 유달산, 대반동, 다순구미(온금동)마을을 지나 목포의 구석구석을 두 발로 걸으며 다녔다.
전라남도에 폭염주의보가 시작된다는 일기예보가 있던 날이었다.
하지만, 때때로 편하게 자가용 을 이용해서 풍경을 스치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취재의 목적이 어촌마을이지만 우리는 사람에 포커스를 맞춰 진행하겠노라 다짐했던 취재였던 터라 직접 걷지 않으면 그곳에서 살아온 이웃들을 만나는 과정이 힘들기에, 우리는 날씨에 주춤하지 않고 발품을 팔았다. 목포의 동네를 구석구석 누비고 돌아다녔다.
대반동 조선내화공장의 땡볕 아래에서 어부가 고기를 수확하다 찢겨진 그물을 꿰매고 계시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젊은 날 돈을 벌겠다고 배를 타고 나간 남편은 사고로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하늘이 무너지는 청천벽력 같은 남편의 비보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정해진 며칠간 장례를 치른 후, 남편이 없는 현실을 어찌해야 할지 생각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먹일 쌀을 살 돈조차 궁했기 때문이다. 혼자가 아닌 내 아이를 위해 밥을 먹여야 했고 그렇게 숨을 쉬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셨단다.
할머니에게 생각은 사치스러웠다고 한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서야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며 숨죽여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단다.
아이들도 그런 엄마를 잘 이해하는 눈치였다고 한다. 엄마가 필요한 나이였지만 엄마의 손길이 한참 필요한 그 시기 둘이서 단칸방에서 지냈을 그 모습을 현재가 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와 마주한 우리들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우리는 다시 목포를 지나 영광, 나주, 벌교, 여수, 고창 등을 지나 현재는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강원도 지방을 취재하고 있다.
바다에서 살아온 사람들뿐이겠느냐마는 그들은 자신의 고단했던 인생 안에서 넓은 통찰을 깨달았고, 자신의 힘들었던 시절을 늘 안고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이 베푸는 따듯한 말 한마디 와 배려는 깊게 손가락 하나까지 짙게 배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조금 더 자신의 마음을 넓게 만들어 간다는 의미는 내 통장 안의 숫자를 가득 메워가며 뿌듯한 것과는 다르게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다 보면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조금 더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처음으로 함께 타인의 삶이란 현장으로 취재에 나섰던 ‘동행인 신정호 작가’는 말했다.
그동안 나만의 세상에 갇혀 살아온 느낌이라고, 그는 각 지역의 바다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던지는 삶의 진리들을 보고 들으며 그동안 자신의 안일했던 생각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리고 손에 움켜쥐고 사는 욕심에 대해서도 깨닫게 됐다는 고백을 한다.
이번 여행은 어수선한 대한민국의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두 남자 가 나아가야 하는 인생의 방향을 알려준 감사한 여행이다.
우리들의 젊은 날은 속도에 치중하는 것보다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 중점을 잡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진리를 알려준 계기가 됐다.
여전히 오는 30일까지 계속되는 취재가 더 남았지만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인생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내가 조우하게 될 그 바다의 풍경은 어떨는지 설레임 가득한 기대로 두근거리는 여유로운 동해 앞바다에서 독자들에게 전하는 글을 적는 새벽이 여유롭다. 습한 날씨에 하늘에 별이 유난히 반짝인다.
당신이 나아가는 하루속에서 무엇을 쫓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당신은 지금 ‘나는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지 생각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