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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가치
과학의 가치
  • 조성돈
  • 승인 2014.07.20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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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돈 전 언론인
 흔히 우리는 과학이 비과학보다 가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과학이란 좁은 뜻으로 자연과학을 의미하지만, 사실상 지식 전반을 아우르며, 학문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 그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인문학이나 사회학 등이 과학 안으로 들어와 앉은 지 이미 오래다. 정치학이 정치과학으로, 법률학이 법률과학으로 불리게 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과학은 사물과 과정의 구조나 성질 등을 살펴, 객관적인 법칙을 탐구하는 인식활동이다. 거기서 나오는 지식, 혹은 응용의 총체가 실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 우리가 과학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자연을 변화시키는 어떤 활동과정, 사회변혁을 위한 실천 등에서, 우리는 과학이 아닌, 과학보다 더 나은 방법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과학이 사물을 이해하는 방법 중에서, 인류가 개발한 최고의 방법이며, 그동안 아무리 성공을 거뒀다 할지라도, 과학이 사용하는 재료, 즉 개념이나 가설, 나아가 법칙 등에는 언제나 제약이 따른다. 그것이 과학의 한계이다. 과학의 기본적 개념은 물론 그 전제, 혹은 과학적 방법이나 기호 체계 등은 여전히 연구해야 할 중요한 과제들로 남아있다.

 최근 수 십년 간 과학사가와 철학자들은 지식 그 자체의 본질에 대해 관심을 집중시켜 왔다. 그들은 과학적 진실이 절대적인 것인지, 과학이론들이 증명될 수 있는 지, 혹은 새로운 이론이 낡은 이론을 어떻게 대체하는지를 연구해 왔다. 그 과정에서 과학이 갖는 가치의 한계가 차츰 알려지게 되었다.

 과학의 수수께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의 기원ㆍ물질과 힘의 본질ㆍ우주 궁극의 운명 등으로 풀리기 어려운 것들만 고스란히 남아있다. 주된 의문 중 많은 부분은 과학의 영역을 넘어선다. 과학은 반복 가능한 ‘관찰’, ‘제어’된 실험, ‘수학적’ 논리에 의해서 유도된 이론으로만 답할 수 있다. 즉 과학이 하는 일은 과학할 수 있는 것에 한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과학하고 싶은 것만 과학한다. ‘관찰’할 수 없는 것ㆍ‘제어’하기 곤란한 것ㆍ‘수학적’이지 않는 것들은 피해간다.

 이솝우화의 여우와 포도이야기처럼, 포도를 먹고 싶어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키가 포도에 닿지 않자, “아마 저 포도는 너무 실거야” 라고 말하면서 여우는 포도를 포기한다. 과학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그래서 여우의 중얼거림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자면, 세포의 역분화 연구가 비관적인 이유도 위에 열거한 방법론적 한계 때문인데, 중얼거림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과학적으로 사랑할 수도, 과학적으로 효도할 수도 없다. 그래서 사랑이나 효도는 과학 바깥에 존재한다. 이처럼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은 늘 비과학의 영역에 잠겨있다. 과학은 그림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밝힐 수 있지만, 왜 그리 아름다운지는 밝힐 수 없다. 과학은 우주의 기원은 더듬을 수 있지만, 왜 우리가 이곳에 서 있는지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를 ‘나’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 즉 왜 내가 남이 아니고 나인지, 어떻게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지를 과학은 설명할 수 없다.

 과학의 한계를 담론하는 과학자들이 늘고 있다. 그 이유는, 과학의 발전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먼 장래에도 여전히 인류에게 쓸모가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이다. 그리고 과학적 사고라는 것이 사물을 이해하는데 도리어 방해가 되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반성이다. 예를 들자면 과학의 도움을 받으려다, 오히려 본질과 멀어져 가고 있는 의학적 치료법들이 특히 우려할 만한 것들이다.

 과학사가들의 지적처럼 과학이라고 불리는 가치가 결코 영구적이지 않으며, 확고부동한 진리는 더욱 아니다. ‘과학적 진리’란 없으며 ‘과학적 사실’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과학은 자주 바뀐다. 우리가 열광하고 있는 자연과학은 유행하고 있는 하나의 믿음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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