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2:07 (토)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7.20 20: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억의 삼천포 시절(178)
 137. 양자로 유혹

 피난 시절 기정이 다니는 경북고등학교는 부산 영도섬에 임시 학사를 만들어 학생을 가르치고 있었다. 영도섬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시장과 환락가가 있었다. 이 환락가를 드나드는 손님들은 씀씀이가 커서 이들을 상대로 하는 뺑뺑이는 꽤 할 만했다. 그래서 경북고 학생 중에는 기정 말고도 몇 명이 뺑뺑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날 불량배들이 물러가자 기정은 잠시 안정을 취하고 다시 영업을 하기 위해 좌판에 앉았다. 잠시 뒤 40대의 중년 신사가 다가왔다. 기정은 이런 손님이 처음이라 두렵기도, 반갑기도 했다. 신사는 기정에게 “학생, 어떻게 하는 거지?”하고 게임 방식을 물어본다. 그래서 기정은 꼼꼼히 설명한다.

 신사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기정이에게 맡기고 건네받은 다트를 뺑뺑이 판을 향해 높이 든다. 그러자 기정은 신사의 얼굴을 슬쩍 한 번 살펴보고는 한 손으로 판을 돌렸다.

 신사가 판을 향해 다트를 날렸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신사는 다시 다트를 날리기 시작했다. 한 번씩 신사가 이겼지만, 전체적으로는 신사가 계속 돈을 잃게 되고, 나중에는 지갑에 돈이 모두 기정의 손에 들려지게 되었다. 기정은 좋은 손님에게서 넉넉히 돈을 딴 것이다.

 돈이 바닥난 신사는 기정에게 “학생, 이제 돈이 없는데, 외상으로 안될까?”라고 한다. 뺑뺑이 돌리기에 외상을 하자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러나 기정은 이미 이 신사에게서 돈을 딸만큼 땄으니 공짜로 몇 번 해줘도 손해가 없을 것 같았다.

 기정은 신사에게 “그래요, 아저씨”하고는 다트를 신사분에게 건네 주었다. 신사와 기정은 다시 게임이 시작했고 얼마 후 신사는 기정에게 잃은 돈보다 3배나 더 많은 외상을 지게 되었다. 신사는 실컷 즐겼는지 “이제 그만해야겠다”하면서 일어난다. 그러고는 기정에게 “저쪽으로 돌아서 50m쯤 가면 대문이 큰 집이 내 집이니 내일 이맘때 외상값을 받으러 오너라”하고는 떠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사롭지 않다. 점잖아 보이는 분이 무슨 이유로 좌판에서 그리 큰돈을 잃었을까? 왜 굳이 자기 집으로 외상값을 받으러 오라는 걸까? 의심이 갔지만, 기정은 그 큰돈을 단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 날 시간에 맞춰 신사의 집을 찾아 나섰다.

 길을 따라가니 언덕에 대문이 큰 집이 나타났다. 대문만 큰 것이 아니었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넓은 마당과 가운데 가지런히 놓여있는 돌 바닥, 그리고 그 양쪽으로 잘 가꿔진 정원…. 아주 좋은 집이었다.

 대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기정보다 2~3살 아래로 보이는 예쁜 여학생이 문을 열어 준다. 여학생의 안내로 기정은 안방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는 어제의 신사가 한복 차림으로 가운데에 앉아 있다가 기정을 보고 환한 웃음으로 “어서 들어오게 학생”라고 한다.

 기정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그의 앞에 놓인 방식 위에 앉았다. 신사는 “어제 빚진 것을 갚아야지”하면서 돈을 내어 놓으신다. 기정은 혹시나 했는데, 진짜 돈을 주니 너무 황송해 “감사합니다”하며 거듭 인사를 했다. 신사는 “자네 피난민 같은데, 그렇지?”하고 묻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혹시… 나의 양아들로 들어올 생각이 없나?”

 뜻밖이었다. 기정은 그 질문으로 이 분이 어제 자기와 불량배들이 다투는 장면을 봤고, 관심이 생겨 의도적으로 자기 좌판에서 게임을 한 것을 알게 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