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1 09:57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7.14 2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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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74)
 어머니는 큰 병원에 입원하셨다. 삼 형제는 한 번씩 수업이 마치면 어머니가 드실 밥과 반찬을 준비해 먼 들판을 지나 병원으로 찾아갔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넓디넓은 들판과 개천이 있었다. 그곳에는 제비꽃과 이름 없는 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 벌과 나비 그리고 한 번씩 개구리가 뛰어올라 형제를 놀라게 했다. 병원에 이르면 어머니는 삼 형제를 너무나 반갑게 맞이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늦어지는 계절 어느 날 기정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가 집에 와 계셨다.

 기정은 ‘이제 어머니가 병이 완쾌되어 집으로 왔구나!’라고 생각하니 너무나 좋았다. 모처럼 가족은 집에서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어머니는 완쾌되어 집으로 오신 것은 아니라 병원에서 병을 고칠 수 없어 퇴원시킨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신 어머니는 점점 기력을 잃었고, 창밖에 첫눈이 내리는 초겨울 어느 날 눈을 감았다.

 삼 형제는 마지막 자신들을 쳐다보는 어머니의 애틋한 눈빛을 평생 잊지 못한다. 그때 어머니의 나이 50세 후반 젊은 나이다.

 135. 남으로 남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한동안 폐인이 되다시피 술로 세월을 보냈다.

 만주를 점령한 일본군은 집집마다 찾아와 놋그릇과 쇠붙이를 닥치는 대로 거둬갔다. 그것으로 총알과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심지어 군인들 식량을 충당하기 위해 집에서 기르는 개까지 몰수해 갔다. 그들은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 번씩 동네에 사이렌이 울리면서 “규수 게이호(경습경보)”하고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면 온 동네 사람들은 집안의 불을 모두 끄고 숨어버렸다.

 그리고 먼 전선에서 전쟁에 패하고 후퇴하는 일본군의 트럭 행렬도 보였다. 전쟁이 끝나가고 있었다.

 얼마 후 드디어 일본은 연합군에게 항복을 했고 전쟁은 끝났다. 조국이 해방됐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힘을 잃었고, 집안을 이끌 사람이 마땅치 않자 일본에서 공부하는 둘째 형이 급히 만주로 온다.

 그리고 둘째 형의 주도로 가족들 남하 계획을 세운다. 먼저 공장이나 부동산 등을 모두 처분해 현금 고액권으로 만들어 베개 속에 나누어 집어넣었다. 그리고 하얼빈역에서 기차를 타고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 황령 청진을 지나 임진강까지 오게 된다.

 그러나 더 이상 남행할 수가 없게 된다.

 일본군이 후퇴한 군사 관리 지역에 소련군들이 주둔해 길을 막고 남행하는 일반인의 통행을 간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떠도는 소문으로는 소련군은 아낙네를 욕보이기도 하고, 가져온 짐꾸러미를 뒤져 돈이나 귀중품을 뺏는다고 했다. 그러니 베개 속에 고액권을 잔뜩 넣고 가는 가족은 배짱 좋게 소련군을 맞설 입장이 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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