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2:58 (토)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7.13 21: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억의 삼천포 시절(173)
 형과 같이 놀고 있던 동생 기준도 형을 뛰어가는 쪽으로 따라간다. 기정은 패싸움에 뛰어들어 만주 아이를 가려내 박치기를 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갑자기 싸움에 뛰어든 두 소년 때문에 판세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벌써 박기정의 박치기에 만주 아이 서너 명이 쓰러지고 있다. 싸움을 못 하는 기준도 눈을 딱 감고 주먹을 휘둘렀다.

 박기정은 그 시절부터 싸움에 소질이 있었는지 닥치는 대로 때렸다. 불시에 나타난 두 협객(?)의 활약으로 만주 아이들은 당황했고, 일본 아이들은 그 모습에 힘을 냈다.

 그러길 잠시 기력을 잃은 만주 아이들은 쓰러진 자기 친구들을 부축하고는 달아나 버렸다. 일본 아이들은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곧 기정에게 감사하다는 표시를 했다. 기정은 그 다음 날부터 학교에 가면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기정은 그것이 달갑지 않았다. 자기는 자기 나라를 수탈한 일본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학우들, 힘없이 맞고 있는 소년들을 도와준 것뿐인데, 마치 친일본 소년으로 대하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었다.

 목장과 옥수수밭, 그리고 만주 사람들은 물고기를 먹지 않아 그런지 물 반 물고기 반인 개울같은 정서적인 분위기는 창작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마냥 한가로운 곳은 아니었다. 한 번씩 독립군이 일본군에게 쫓겨 옥수수밭으로 숨어버리면 일본군들은 그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기 일쑤였고, 한 번씩 만주인과 일본인이 충돌이 생겨 패싸움이라도 벌어지면 온 동네가 난장판이 됐다.

 저번 패싸움에 두 아들이 개입된 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형제를 불러 놓고 “다시는 그런 싸움에 나서지 말라”고 충고를 했다.

 패싸움이 시작되면 일본인들은 기정을 찾았지만, 기정은 어머니의 충고가 생각이 나서, 멀리서 일본 애들이 자기 집으로 몰려오는 것을 보면 동생 기준에게 “형 심부름 갔다고 해”라고 시켜 놓고 다락에 숨어 버리곤 했다.

 134. 어머니 회상

 선생님의 어머니는 생활력이 강하고 영리한 분이었다. 여자는 가정에서 말없이 지내야 하는 조선 사회에서 보기 드문 여성활동가였다. 포항에서 결혼한 후 5형제를 낳아 굳건히 키웠고, 남편을 도와 공장일과 거래처를 관리했다. 남편에게는 열 명의 직원이 부럽지 않은 든든한 내조였다.

 그리고 인정이 많아 갈 곳 없는 여자아이를 제 자식처럼 키웠다. 자식들에게 사람은 배워야 구실을 한다며 모두 학교에 보내 교육시켰다.

 1930년대 암울한 조선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다. 첫째는 일본 동경에서 중앙대학을, 둘째는 일본 상업대학에서 공부를 시켰다. 만주에 와서는 남아 있는 형제 모두 학교에 보냈다.

 달라진 환경에서도 거래처와 직원들 관리, 또 조선에서는 하지 않았던 지방 관리과 유지 관리까지 했다.

 어머니는 무리한 탓이었는지, 어느 날 기운을 잃고 주저앉았다. 가까운 병원에서 며칠 동안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래서 십리 밖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병이 깊어 입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