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4:04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7.08 2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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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70)
 132. 국무 총리감 친구

 건설현장에서 문화재를 헐값에 팔았던 점, 삼천포여중의 문화재 수집 사건을 두고 보면 그 뒤주 안의 것들은 당시 큰돈이나 어려움을 겪지 않고 모은 것으로 생각된다.

 문화재를 잔뜩 채운 뒤주를 앞에 두고 나는 상당히 귀한 보물인 줄 알고 재우에게 “이것 나 하나 주라”하고 말했다. 재우는 곧바로 “안된다. 이건 내 물건이 아니라 줄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단호한 말투에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목소리를 두 옥타브 높여서 “야, 이거 맡길 때, 몇 갠지 알겠나. 하나 준다고 표시가 나냐?”하고 윽박질렀다.

 가득 찬 보물이 한 두개 없어진다 해도 한강에 돌멩이 하나 던진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도 재우는 둘도 없는 친구에게 안된다고 우기고 있다.

 로타리 동네 골목대장, 남에게 주기를 좋아하고 받기를 좋아하던 당시의 내 정서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돈이 생기면 친구들부터 맛있는 것을 사먹이던 나다.

 아이들에게 미국 주화 1달러도 받아보고, 권총으로도 된 라이터, 만화책이며 잡지며 만년필도 받아본 나이다. 같은 골목대장 운봉이었다면 하나가 아니라 서 너개도 줬을 것이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재우만 고집을 부리고 있다.

 잔뜩 기분이 상한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서 있는 재우에게 “줄꺼야, 말꺼야”하고 고함을 질렀다. 재우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돼 “나더러 도적이 되란 말이냐?”라고 한다. 기가 막혔다. 그런 소리까지 하다니, 내가 할 말이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재우에게 “알겠다. 이 새끼야”하며 욕을 한마디 내뱉고 보물을 포기했다.

 그 후 문화재가 교장선생님을 따라 부산으로 갔는지, 삼천포에 남겨졌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세월이 흘러 10년이 지났다. 나는 서울에서 후학 교육을 위해 만화학원을 경영하고 있을 때다. 재우는 삼천포의 재산을 정리해 서울로 올라와 서대문 쪽에 있는 경기대학에서 교수로 재임하고 있었다.

 재우는 결혼해 남자아이를 하나 낳아 길렀는데, 아이가 천재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영리하고 공부를 잘했다. 그래서 재우 부부는 온 삶을 아이에게 정성을 들이며 살고 있었다. 그때도 서로 연락을 하면서 지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꼭 연락할 일이 있어 재우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재우는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고 3일 후 느닷없이 재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야, 너는 친구 전화도 안 받냐”하고 따지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자 재우는 “부진아 미안하다. 실은 내가 호텔에 감금되어 있어 전화를 못 했다. 그리고 이 전화도 도청당하고 있어, 그러니 다시 전화할 때까지 며칠만 기다려라”하고 전화를 뚝 끊어 버린다. 참 이상했다. 호텔에 감금이라니, 도청이라니 지금 007 영화를 보는 것도 아닌데…. 전혀 재우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도대체 재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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