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7.03 21: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억의 삼천포 시절(167)
 129. 보물 상자와 친구

 내 친구인 시장 손주 재우도 벌리뜰 지주집이었다. 재우 집은 시내의 집과 한내다리 쪽에 정미소도 있고 벌리뜰에 땅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재우 어머니는 상당한 미인이었는데 6ㆍ25전쟁 때 재우 아버지가 인민군에게 총살당한 후 미앙인이 되셨다. 내가 초등학교 3~4학년 때 그 집에 놀러가면 굉장히 반갑게 맞아 주셨는데 몇 년 후 재혼하셔서 다시는 뵐 수 없었다.

 그 후 재우 할머니가 어린 재우와 여동생 둘을 키우셨다. 할머니는 무슨 일이든 사리 깊게 생각하셨고, 친구들과 집에 놀러 가면 뭐든 많이 가르쳐주고 싶어했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재우 할아버지는 삼천포 시장으로 계셨는데, 학교에 행사가 있을 땐 직접 와서 학생들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해주셨다.

 1977년 내가 삼천포에 내려와 있을 때 일이다. 그때 재우는 부산에서 대학을 마치고 삼천포여자중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재직하고 있었고, 건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삼천포야간중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는 어릴 적처럼 자주 어울려 다녔는데, 어느 날 재우가 나에게 “부진아, 우리 교장선생님이 부산으로 이사 가면서 남은 물건을 나에게 맡겨 놓았다. 그 물건은 진귀해서 아무도 보여 주지 말라고 했는데 너에게만 보여줄 테니 우리 집으로 가자”고 말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라는 물건, 나는 너무나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물건은 분명히 귀한 물건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잔뜩 기대를 하고 재우를 따라갔다. 원래 재우 집은 진삼도로 옆 삼천포초등학교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데, 재우는 그쪽으로 가지 않고 각산 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곳은 천석꾼 장주사님 집과 붙어 있는 고옥인데 중학교 교장선생님이 살았던 집이다.

 그런데 왜 그분 집을 자기 집이라 했을까? 아마 그 무렵이면 재우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타계하셨기 때문에 자기 집 재산을 관리하면서 이 집을 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지붕과 담을 두꺼운 기와로 얹은 아름다운 고옥. 정원에는 몇 백년 된 소나무와 고목들이 우거져 있고, 작은 옹달샘에 금붕어들, 대문에서 안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가지런히 깔린 납작한 돌들, 마치 한적한 곳에 위치한 별장을 연상하게 하는 집이었다.

 안으로 더 들어서자, 아담한 정원 한가운데 커다란 뒤주가 둘 놓여있었다. 사람이 웅크리고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조선시대 사도세자가 갇혀 죽은 그런 뒤주였다.

 재우는 그 뒤주 뚜껑을 열었다. 나는 그 안의 물건을 보고 너무 놀랬다. 그리고 보지마자 “재우야, 나 하나만 주라”하고 사정없이 한마디 내뱉는다.

 그 안에는 조선백자, 고려청자, 백자 주전자 등 진귀한 물건이 꽉 차있었다. 그것도 두 뒤주씩이나….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