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7.02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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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66)
 128. 하이힐 신은 할머니

 삼천포 문화원의 뒷골목 가정집에서 돼지를 키우는 나의 할머니도 벌리뜰 지주였다.

 일제강점기 때 삼천포 읍에 신식 학교인 수남국민학교가 세워졌는데, 그때 돼지 할머니 큰 아들이 입학했고, 또 고성군 하이면 덕호리 부농의 큰 아들이 이 학교에 입학했다. 두 아이는 곧 친해졌고, 부농의 아들은 삼천포 친구가 좋아서 자기 여동생을 소개했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여기서 돼지 할머니의 큰 아들은 내 아버지고, 부농의 딸은 내 어머니다.

 어머니가 삼천포로 시집올 때 할아버지는 양조장에서 근무하셨고, 할머니는 밭과 논을 4~5마지기 정도 가지고 농사를 지어 자식 열 명을 가르치셨다.

 그중 두 분은 일본으로, 한 분은 이북으로 또 한 분은 남해로 시집을 갔고 우리 아버지는 출가해 로타리 동네에서 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할머니는 가난한 농사꾼에 불과했다.

 그런데 내가 서울로 올라오고 몇 해 후인 1965년쯤, 일본에 사는 두 분이 할머니를 일본으로 초대했다. 할머니는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향한다.

 일본에 사는 사위가 바다에 어장을 하는데 그것이 잘되어 큰 돈을 벌었다. 사위는 그것뿐 아니라 플라스틱 공장도 운영했는데, 할머니의 딸은 그 공장에 물건을 납품하는 가내 공장을 차려 돈을 벌었다고 한다.

 일본 사위는 나중에 자기처럼 돈을 많이 번 제일동포 몇 사람과 함께 작은 금융회사를 세우기도 하고, 나중에는 한국에 은행을 세웠는데, 이 은행이 신한은행이다. 즉 할머니의 사위는 한국 신한은행의 대주주가 된다.

 딸은 할머니를 깍듯하게 대접했고, 할머니가 서울로 돌아갈 땐 두툼한 돈 보따리와 빨간색의 미니스커트에 파란색 재킷을 입히고 검정 고무신 대신 빨간 하이힐을 선물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귀국길에 자가용으로 공항까지 무사히 갔고,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구까지는 딸의 부축으로 아무 탈 없이 왔지만, 안으로 들어간 뒤부터는 부축해주는 사람이 없어 문제가 생긴다.

 처음 신어 보는 하이힐이 마치 생명이 있는 듯 제멋대로 놀았다. 걸을 때마다 발목이 비틀대니 마치 외줄 위를 걷는 것 같았다. 두 손은 중심을 잡기 위해 높이 벌리고 곡예를 한다. 그러니 그 광경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가까스로 자리에 앉았는데 온몸에 땀범벅이다. 옆에 앉은 사람이 할머니께 “누가 그 옷과 신발을 사줬소?”하고 물었고, 할머니는 신이 나서 “일본에 사는 딸이 사준 거요”하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반대편에 앉은 사람이 농으로 “불효 여식이네”라고 한다. 할머니는 크게 화를 내며 “그런 소리 마소. 우리 딸이 얼마나 효녀인데”라고 했다. 그 대화에 모두 깔깔대고 웃었다. 할머니는 김포 공항에 도착하자 할 수 없이 신을 벗어들고 집까지 오게 된다.

 그 후에 우연한 일치인지, 정말 우리 할머니 이야긴지 모르지만, 신문과 라디오에서 비행기 안의 비녀 머리를 하고 빨간 미니스커트에 빨간 힐을 신은 할머니 이야기가 유행했다.

 할머니는 그때 일본에서 가져온 돈으로 벌리뜰에 논을 천 평 넘게 사면서 지주가 되어 재산을 배로 늘렸고, 할머니와 함께 그곳에 나서면 나까지 지주집 장손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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