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6.1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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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51)
 부부는 아이를 원했지만, 초기에 임신 사실을 몰라 감기약 등을 먹었는데, 그것 때문에 희아가 불구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초음파로 희아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주위에서는 아이를 포기하라고 했지만, 부부는 그래도 그런 자식이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희아를 낳았다.

 이름은 포르투갈의 ‘희아신다’ 성녀의 이름을 따와 지었다 한다. 그리고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아 작은 관도 준비했다고 한다.

 비록 병원에서 지내야 했지만 희아는 무사히 자랐고 희아 엄마는 항상 불구의 남편과 불구의 희아를 돌봐야 했다.

 희아가 철이 들 무렵엔 연필을 제대로 잡을 수 있는 힘을 키우기 위해 피아노를 가르치려고 학원을 찾았는데 찾는 곳마다 희아를 거부했다. 그러던 중 아는 분의 소개로 ‘숲속피아노학원’의 조미경 선생님을 찾아갔고 그가 희아의 스승이 된다.

 조 선생님은 희아는 남들보다 더 혹독하게 연습을 시켰고 희아의 엄마는 그런 선생님의 수고를 덜어주려 집에서도 연습을 시켰다.

 가여운 희아, 어리고 약한 몸으로 학원과 집에서 혹독한 연습에 지쳐 꾀를 부리자, 그걸 눈치챈 엄마가 희아를 마루에 던져버리기도 했다. 그런 엄마의 매서움에 희아는 다시 피아노에 전념해 노래에 맞춰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게 됐다.

 처음 친 곡은 동요 ‘나비야’였다. 희아는 피아노를 배운지 일 년 반 만에 전국 학생 연주 평가회 유치부에 출전해 최우수 상을 받았다.

 희아는 특수학교에서 계속 피아노를 치고 상을 받아 오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한국 특수교육 100주년 기념대회에 나가 최고 점수를 받기도 한다.

 희아가 5학년이 되던 어느 날 모 신문에 희아 이야기가 나간 후로는 이곳저곳에서 취재가 잇달아 희아의 명성은 널리 알려진다.

 그 후 희아의 이야기는 9시 뉴스에도 나오고, 미국의 CNN방송도 나가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운봉은 생전에 자기가 성한 몸이라면 희아를 등에 태우고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동안 부부의 고난은 눈물겨웠다. 희아 엄마는 몸이 불편한 두 명을 돌보느라 늘 긴장하며 살았고, 자기도 유방암으로 아팠을 때에는 3명 모두가 환자가 되기도 했다.

 성인이 되자마자 장애인이 되어 평생을 휠체어에 앉아서 지냈던 운봉. 그러나 장애인이 되어서도 다른 장애인을 위해 사업도 하고, 천사 같은 여자와 결혼도 하고, 불구의 딸을 낳았지만 힘껏 가르쳐 피아니스트로 만들었다.

 희아 엄마는 어릴 적에 꿈인 간호사가 되어 환자를 돌보고 또 환자인 남자와 결혼하고, 장애인 딸을 돌보며 살아가고 있다.

 또 희아는 장애인으로 태어나 처음에는 주위의 놀림을 받고 살았지만, 힘겹게 피아노를 배워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깔보지 못할 입지를 만들었다. 친구 운봉의 식구들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눈물뿐이다. 그러나 나에게 기억되는 운봉의 이미지는 용감무쌍한 쾌남 그 자체다.

 서로 많이 때리겠다고 싸운 적이 몇 번인가, 서로 부둥켜 안고 넘어트리려 용을 쓴 게 몇 번인가. 노산으로 각산으로 또 남일대로 놀러 다니던 것은 또 몇 번인가. 이제 운봉은 하늘나라에서 멀쩡한 두 다리로 뛰어다니며 희아와 부인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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