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0:57 (토)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5.11 2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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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29)
 98. 하늘이 무너진 사연

 왜 그랬을까… 바보 같은 금선이다. 그렇게 될 바에 시집가지 말고 나한테 찾아와 같이 살자고 매달려나 보지. 나도 그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같이 뒹굴고 살아 볼 걸 하고 후회가 된다.

 정말 한 치 앞을 못 보는게 인간사다. 소문으로는 남편이 바람을 피웠던게 화근이었다고 한다. 그 사람은 금선에게 좋다고 매달릴 땐 언제고, 그토록 나쁜 짓을 했단 말인가. 그리고 금선이는 어떻게 그런 모진 결정을 했단 말인가.

 사쿠라 보시 집 넷째 딸 금선이는 어릴 적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친구 오빠에게서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하자 자기 아니면 죽겠다고 달라붙는 남자에게 끌려가다시피 결혼했는데, 일 년 남짓 만에 남편에게 딴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딸을 남겨두고, 그만 스스로 생을 포기하고 말았다 한다.

 꽃다운 20대 금선이는 자기 자매들, 남동생보다 50년이나 먼저 가버린 것이다.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모두들에게 밝은 웃음을 보여주던 금선이, 학창 시절 자신을 따르는 남학생들을 따돌리던 그때만 해도 금선이에게는 어두운 구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는데 결혼해서 살다 보니 그 세상은 너무나 낯설고 궂은일 투성이었던 모양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에 어쩌면 나에게도 책임이 있는 양, 내 양심이 요동쳤다. 갑자기 금선이의 모습이 세상이 아롱거리는 것에 당황스러워진다.

 나는 그렇게 한동안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몇 달 후에 나는 삼천포에 내려와서 사쿠라 보시 집을 찾았다.

 전과 다름없이 우물가를 지나 마루가 넓은 집. 마루 위에는 팔공주 사진이 그대로 걸려 있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금선이 어머니의 모습도 그대론데 얼굴은 웃음기가 없었고 다정한 인사도 없었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곁눈질로 대하는 자세가 마치 사쿠라 보시를 사러온 손님을 대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행여 어머니가 마음속으로 나를 원망하고 있는게 아닌가’하고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래도 ‘너를 원망한다’는 건네지도 않은 말에 태도를 함부로 할 처지가 아니었다. 얼음물을 끼얹은 듯 차가운 공기를 뒤로한 채, 가지고 있던 돈만큼 사쿠라 보시를 사들고 나오며 나는 ‘왜 여길 왔던가, 무슨 말을 기대하고 온 것인가’하는 후회를 했다.

 나는 그 후로는 용기가 없어 사쿠라 보시 집을 찾지 못했다. 당연히 그렇게 좋아하던 사쿠라 보시도 먹어보지 못했다.

 2014년 지금은 사쿠라 보시 집이 향촌에 공장을 지어 장소를 옮겨 3대째 김원일 사장이 이어가고 있고 아직도 삼천포 명물로 자리하고 있다.

 나는 한 번씩 달이 밝고 별이 반짝거리는 밤하늘을 보며 먼저 세상을 떠난 정다운 사람들을 헤아려볼 땐 금선이를 먼저 떠올리곤 한다. 그때마다 금선이는 해맑은 웃음과 영롱한 눈빛으로 내 가슴을 비춰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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