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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그린 법정 큰 스님
흙으로 그린 법정 큰 스님
  • 경남매일
  • 승인 2014.04.27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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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석 초대전
▲ 화가 김호석
 “죽은 그림을 그리지 말고 살아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요즘 작가는 살아 있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없어.”

 1983년 당시 해인사에서 머물던 법정 스님(1932∼2010)은 “그림을 배우는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20대 청년에게 이 같은 말을 전했다.

 “눈빛은 강렬하고 냉철했지만 인간적인 맑음이 느껴지는 분”이라고 법정 스님을 회고한 이 청년은 당시 인물화 작업을 막 시작했던 화가 김호석(사진)이다.

 김호석은 생전 유일한 만남이었던 이때 법정 스님을 스케치하고 6장의 사진을 찍어뒀다. 이런 기억과 자료는 추후 법정 스님 진영(眞影)의 바탕이 됐다.

 3년 전 법정 스님의 진영 제작을 의뢰받은 그는 법정 스님이 남긴 수많은 글을 읽고 법정 스님이 자주 만났던 사람, 산책하던 길 등을 수없이 접하며 법정 스님에게 한발씩 다가갔다.

▲ 법정스님 진영 1천186X141㎝, 종이에 수묵채색, 2013.
 최근 정동에서 만난 작가는 “법정은 누구인지, 법정을 그려야 하는 당위성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했다”며 “법정 스님의 그림을 통해 불교와 무소유의 정신을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현재 성북구 길상사에 걸려 있는 진영이다. 법정 스님의 유골로 그린 작품이다.

 또 다른 진영 2점은 법정 스님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송광사 불일암 앞 대숲에서 흙을 채취해 그렸다.

 작가는 다음 달 1일부터 사간동 광주시립미술관 갤러리GMA에서 열리는 기획초대전 ‘김호석-묻다’전에서 법정 스님의 진영 2점을 비롯한 작품 20여 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뒷면에 100여 번의 중첩으로 색을 입혀 자연스럽게 앞면에 색이 배어 나오게 하는 전통 초상화의 배면 기법으로 작업하는 것을 고수한다.

 “더 지우면 그림이 안 되는 상태가 될 정도로 단순하고 간명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림은 이래야 한다’는 관념의 장치를 제거하고 달의 주변을 그려 달을 나타내는 ‘홍운탁월’(洪雲托月) 기법으로 작품을 그렸죠.”

 법정 스님이 외출 시 벗어둔 옷을 그린 작품은 ‘덧’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낡은 껍데기”에 불과한 옷에 매여 있는 이들의 어리석음을 꼬집는다.

 법정 스님이 서툴게 만들어 늘 쉬고 있던, 지금은 불일암을 찾는 이들이 앉아 법정 스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낡은 의자는 뉘어 놓고 그림을 그렸다. ‘이제는 의자가 쉬자’는 제목의 작품이다.

 작품 ‘불일암’은 법정 스님이 김장을 하고 한 포기 남겨뒀던 배추가 주인공이다.

 얼핏 보면 평범한 사물 같지만 여백과 어우러지며 보편적 가치를 드러낸다.

 “선(禪)이 무엇인지, 불교가 이 시대에 왜 필요한지, 제 그림을 통해 법정 스님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전시 제목도 ‘묻다’이다.

 전시는 6월 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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