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0:05 (토)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4.14 2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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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12)
 나는 성문사 만화전질을 삼천포에서 처음 볼 적에는 서울에서의 만화 제작 과정을 알 수가 없었지만, 훗날 만화가가 되었을 때 선배들과 어울리면서 성문사 만화 제작 과정을 들어 대강 알 수 있었고 그것을 정리해 보겠다.

 퇴계로 대원호텔 앞의 건물 1층 원고 제작 화실. 그곳에서 박광현, 박기당, 추동식, 이병주 선생님과 문하생 등 열 명 정도가 기거하며 원고를 그렸다.

 김종래 선생님은 조용한 것이 좋으셨는지, 따로 종로 화신극장 뒤쪽에 여관을 얻어 따로 작업을 하셨다. 김종래 선생님은 배경이나 잔일을 처리할 일이 생기면, 퇴계로 화실에 박광현 선생님에게 부탁해 문하생을 지원받고는 했다. 그때 송길성 선생님이 양쪽으로 부지런히 다니며 선생님들의 작업을 도왔다.

 놀기 좋아하던 박광현 선생님도 작업에 들어가면 밤을 새워 일에 몰두했다. 당시 박광현, 김종래 선생님은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창작했는데, 김종래 선생님 작품은 ‘숙향전’이고, 박광현 선생님은 ‘숙향 낭자전’이다. 왜 두 분이 같은 주제의 작품을 하셨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혹시 한 쪽은 비슷한 작품 ‘숙영 낭자전’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해본다.

 숙향전은 17세기의 작가 미상의 중국 고전작이다. 중국 송나라 시절 김전이라는 선비가 결혼해 숙향을 낳았다. 숙향은 전생에 선녀였는데 죄를 지어 땅에서 태어난다. 아버지 김전이 금나라의 침공으로 딸을 피신시키고, 부부는 도망을 친다. 부모를 잃어버린 숙향은 온갖 고생을 하며 5번의 고비를 넘긴다. 그 과정에서 용녀, 마고 할머니 등의 도움을 받는다.

 또 이선이란 청년은 태어날 때 숙향을 만나 결혼한다는 선녀의 예언을 잊지 못하고 있다가 장성해 숙향을 찾아 나서고 결국은 결혼을 하면서 아버지의 반대 등 고난을 겪은 후, 70세의 나이에 숙향과 함께 천상으로 올라간다는 이야기이다.

 박광현, 김종래 선생님 두 분의 숙향전은 동시에 출간됐지만, 성문사 첫 전질에 속했는지 분명치 않다.

 그리고 성문사 작가 사무실에 신영식이라는 문하생이 있었는데 이분도 실력이 대단해 후에 몇 편의 대작을 남기신 분이다.

 그런데 하루는 신영식 선생님을 찾아 17살, 14살의 남매가 찾아 왔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조카들이었던 것 같다. 그때 남매는 생활고에 심하게 찌들어 있었고, 누군가 마약으로 어려움이 있는 듯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신영식 선생님이 이들을 어떻게 도왔는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지만, 그 이후 남매는 가수가 되어 자리를 잡게 된다. 꽤 이름을 날리게 되는데, 오빠는 ‘윤항기’, 여동생은 ‘윤복희’이다.

 성문사의 여러 작품 중 박광현 선생님의 ‘임꺽정’은 주인공의 우람한 체구로 보는 이들을 압도했고, 박기당 선생님의 ‘불가사리’에서는 쇠를 먹고 자란 소의 위용이 대단했다.

 또 ‘손오공’에서 오공은 머리만 원숭이를 닮았고 팔다리나 걷는 모습은 사람과 흡사했다. 또 박기당 선생님의 ‘예수님’도 있었는데, 전설, 괴기 등 불가에 얽힌 작품을 많이 다루신 분이 기독교 작품을 제작했다는 것이 의외였다.

 성문사는 화실 임대, 작가와 문하생들의 생활비, 사무실 관리비 등을 투자했고 제작 멤버들은 최선을 다해 원고를 한 권씩 마무리 해 나갔고, 한국 최고의 작품들은 이런저런 사연과 함께 어려움을 딛고 출간하게 된다.

 김종래, 박광현, 박기당 세 분이 같은 시기에 같은 출판사 소속으로 같은 사무실에서 작품을 제작해 최고의 대작을 남겼다는 것은 한국 만화계의 기적이고 큰 행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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