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9:36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4.01 2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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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03)
 또 빵 기계를 노리는 악당이 짱구박사 납치를 시도하면서 이야기는 얽히고설켜 흥미를 더해 갔다.

 추동식 선생님의 본명은 고일영이고, 형의 이름은 고상정이시고, 동생은 고우영이다. 선생님의 아버지가 일제강점기 때 중국 만주에서 경찰의 고위 간부로 지낸 덕분에 식구들은 하인을 거느리고 윤택하게 살았다.

 그러나 1945년 일본이 패망하면서 가족들은 중국에 계속 살지 못하고 조선으로 들어와 잠시 이북 평남에서 자리를 잡았지만, 그곳에서 친일파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946년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넘어온다.

 서울에서 선생님의 아버지는 낚시로 소일거리를 하시며 지내시다가, 같이 일본 경찰에서 일하던 사람이 내무부 고위 간부로 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위에서는 그 간부를 찾아가라고 설득했지만, 아버지는 “조국을 배반한 자기가 어찌 또 호강하겠느냐”며 그분을 찾지 않았다 한다.

 다시 나라는 6ㆍ25전쟁이 나면서 선생님의 가족은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고 또 선생님과 선생님의 형은 부산에서 만화를 그려 생계를 이어 가게 된다. 그때 짱구박사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다시 식구들은 서울로 올라가게 되고 또 황금시절이 오면서 선생님은 행운을 잡게 된다. 성문사 출판사에서 우리 나라 도서로는 처음으로 만화로 전질 제작을 계획하고 박광현, 박기당, 김백송, 김종래 등 우리나라 최고의 작가들에게 원고 창탁을 하면서 추동식 선생님도 합류시켰다. 작품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소설 ‘쿼바디스’를 만화화하는 것이다.

 마침 미국 영화 로버트 테일러 주연의 영화 쿼바디스가 한국에서 히트한 후라 그 자료가 선생님의 작품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선생님의 원고가 2~3쪽만 그리면 완성인데 그만 원인 모를 불운을 당하신 것이다. 그래서 쿼바디스 만화를 보면 마지막 2~3쪽은 그림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그 나머지는 동생 고우영 선생님이 그린 것이고 또 고우영 선생님은 형의 작품 짱구박사를 ‘추동성’이란 필명으로 그리게 된다.

 81. 애환의 수창의원

 1950년 해방에서부터 1970년대에 삼천포 시내 한복판 로타리 동네에 위치한 수창의원은 내 성장기에 정서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병원이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는 우리 집과 수창의원과 200m 정도에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식구들을 아무도 몰랐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과 더불어 교회 주일학교에 나가게 되었는데 그 교회가 삼천포 장로 교회였다.

 의자가 없고 마룻바닥인 교회에 초등학교 일학년인 나는 제일 앞줄에 앉게 됐는데, 그 줄 앞에 유치원생이 여러 명 앉아 있었다.

 이들 중 한 아이가 머리는 하이칼라이고 옷은 어른들이 입는 모양의 셔츠와 양복에 검정 나비넥타이를 매고 앉아 있었다.

 당시 남자 어린이들의 머리는 모두 빡빡머리였는데 조금 여유가 있는 가정의 아이들은 빡빡 깎지 않고 조금 남기고 깎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머리 스타일을 ‘하이칼라’라고 불렀다.

 이 귀공자 아이가 수창의원 원장님의 사위 박 의사의 맏아들 박상호였고 그때부터 나는 상호와 친구가 되었다.

 또 내가 3학년이 되었을 적에 문선학교에서 삼천포 초등학교를 진학했는데, 그때 내가 배정된 교실에는 상호 누나 박양자가 있었다.

 양자는 나와 동갑내기이고 교회와 학교에서 같이 다니는 사이가 된다. 양자는 그때 이미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러다가 내가 전학 온 그해 여름에 우리 집은 로타리 동네, 바로 수창의원 옆집으로 이사를 한다. 이제 우리 집과 수창의원 본채하고는 등을 맞대고 사는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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