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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4.01 0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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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02)
 그 구멍가게는 큰 손해다. 껌은 모두 그대로인데 만화는 한 권도 없으니 말이다. 그 구멍가게 아주머니는 낑낑 앓다가 나를 찾아와 “부진아 좀 봐달라”며 책을 도로 돌려 달라고 사정했다. 나는 아주머니 사정에 못 이겨 도로 돌려주었다.

 그때의 뽑기 만화는 16쪽 정도의 정상적인 만화책이었다. 만화가들은 뽑기만화를 위해 원고를 제작했는데 그쪽에서 거대한 만화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내가 읽어본 뽑기만화 중에는 ‘영광의 월계관’이란 책이 있었는데 달리기 선수의 성공을 담은 작품으로 연재를 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그리고 괴기스러운 작품도 있었는데, 그 작가는 이후에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1957년 전후 만화 황금시절은 서점에도, 골목마다 만화 대여점, 구멍가게마다 뽑기만화로 온 세상이 만화였다.

 80. 추동식 선생님

 1950년 전반기 미국에 ‘이유없는 반항’, ‘에덴의 동쪽’, ‘자이언트’ 세 편의 영화로 미국 영화계의 핵심적 인물로 등극한 제임스 딘은 교통사고로 1955년에 23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하고 만다.

 영화와 만화를 좋아하던 나는 미국 명배우의 비보를 듣고 아쉬워했다. 사실 나는 제임스 딘의 비보를 들을 당시 제임스 딘의 영화를 보았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제임스 딘의 유명세나 인기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와 흡사한 사건이 한국 만화계에서도 발생해 그 비보가 삼천포까지 날아든다. 그것은 짱구박사로 꾸준히 인기를 얻어 오던 추동식 선생님이 1956년쯤 단행본 쿼바디스를 출판하고는 20대 젊은 나이에 급사한 것이다.

 그 당시 선생님은 회사에서 마련해준 화실에서 작업과 침식을 하셨는데 어느 날 침실에서 싸늘한 시신의 모습으로 발견된다.

 순경들이 와서 사인을 조사했는데, 외상도 없었고, 독을 마신 것도 아니었다. 관리인의 이야기로는 “전날 젊은 여인이 사무실에 잠시 다녀갔다는 것”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여인이 흉기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독극물을 마시게 한 것도 아니니 혐의는 없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죽은 것일까? 사인을 가지고 세인들 사이에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지만, 사실로 확인된 것은 없었다. 결국 추동식 선생님의 사인은 심장마비로 결론이 내려지고 사건은 종결됐다.

 미국 영화계의 샛별이었던 제임스 딘과 한국 만화계의 추동식 선생님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입장에서 젊은 나이에 타계했다.

 추동식 선생님의 쿼바디스는 서점용 만화 단행본으로, 양장으로 표지를 만들고 250쪽 정도인 대작이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웅장함과 세련된 데생은 한국 만화 중 로마배경의 극화 중에서 그만한 만화책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독자들은 더욱 애석한 것이다. 추동식 선생님이 젊은 날에 타계하지 않았다면 어떤 대작이 나왔을지 모른다.

 쿼바디스 이전의 작품 ‘짱구 박사’는 선이 일정한 3등신 만화체이며, 머리가 크고 역삼각이고 머리카락이 세개, 원 모양의 둥글고 큰 안경을 끼고, 넓은 십자 무늬의 양복을 입고 다녔다. 그리고 앙칼스럽게 생긴 마누라는 박사의 엉터리 연구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늘 짱구박사를 향해 잔소리를 퍼붓는다. 그러나 짱구박사는 굴하지 않고 연구에 몰두한다.

 연구에서 실수하는 횟수가 더 많지만 그래도 물로 가는 자동차, 빵이 쏟아져 나오는 기계 등 양질의 발명품을 탄생시키고, 짱구박사가 비행기에 빵기계를 싣고 하늘에 올라가 빵을 뿌리면 늘 굶주림에 허덕이던 독자들은 마치 만화 속에 관중들처럼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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