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23:58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2.26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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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79)
 60. 황금 시절, 물 만난 물고기

 1955년 가정집에는 TV도 보급되지 않았고, 라디오도 귀할 시기였다.

 문화적 혜택이란 기껏해야 돈과 시간을 들여 극장에 가서 영화나 연극을 구경할 정도였다. 이때 한국 만화계는 일본 번역물 ‘밀림의 왕자’가 서점에 선을 보이면서 전국이 만화 열풍에 휩싸이게 된다.

 그 이후 ‘밀림의 왕자’로 만화 사업에 자신을 얻은 김성욱 사장은 서점 판매용 만화 전문 잡지 ‘만화 세계’를 발간함으로써 한국 만화계는 바야흐로 황금 시절이 도래한다.

 서점에서 제일 잘 팔리는 책이 만화책이고, 골목마다 대여점이 생겨나고, 구멍가게에서도 두꺼운 종이에 만화책을 6권 정도 붙여 놓고 아래에 있는 껌 한 개비를 사서 뜯어 운이 좋으면 만화 한 권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어딜 가든지 만화 판이었다.

 황금 시절 초기에 박광현 선생님의 작품으로 ‘암굴왕’이 있었다. 이 작품은 한쪽에 글이 절반이고 그림이 절반인 것이 김정파 선생님의 ‘아ㅡ무정’과 같은 식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내용은 빅톨 유고의 ‘레미제라벌’을 각색한 것인데, 박광현 선생님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작품이고, 독자에게도 대단한 인기가 있었다.

 그 몇 년 후에 성문사 출판사에서 한국 최초의 전질 책인 만화 전질 세트로 만들 적에 재판되면서 제목을 ‘그림자 없는 복수’로 개명되었다. ‘그림자 없는 복수’는 근래 부천 만화정보 센터에서 복간해 한국 만화 황금기의 위상을 독자들이 엿보게 하였다.

 성문사 전질 만화 전질에 ‘그림자 없는 복수’ 외에도 ‘임꺽정’, ‘숙향 낭자전’도 있었으니, 12권 전질에 선생님의 작품이 3권이나 됐다. 선생님은 전질 만화의 주멤버이신 셈이었다.

 선생님은 작품 활동 외에도 만화 전문 잡지 ‘만화 소년소녀’를 창간, 3회 정도 발간하고 중단하셨다. ‘만화 소년소녀’의 멤버는 최상권, 신동헌, 신동우 형제가 있었고 작품으로는 박광현의 바보온달, 백호활살검, 최상권의 황금마패, 박기당의 풍운 흑기선이 연재됐다.

 그리고 황금 시절 말 인기였던 선생님의 작품으로는 ‘젊은 넋과 복면 마당쇠’, ‘사명대사’ , ‘유도령의 비사’ 또 고전을 가미한 시대극과 ‘청동마인’, ‘지저의 마성’, ‘남매는 살아있다’와 ‘진달래 공주’ 등이 있다.

 말보다 주먹이 빨랐던 그는 50년 중반에 충무로의 주먹대장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며 의리 또한 남달랐다. 어려운 후배들에게 돈 한 푼 없이 밥을 사주며 시계나 외투 등을 벗어 맡기며 큰소리치는 기세는 열혈남아였으며, 만화판 대부이며 전설이기도 하다.

 급한 성질의 선생님이셨지만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정성을 다해 밤을 새우기 일수였다. 데생은 그야말로 지우고 또 지워 완벽하고 정성을 다해 그렸는데, 다른 사람 누구 하나 대신해 그려내지 못해 선생님의 문하생들도 감히 손댈 수 없었다.

 꼼꼼히 그려낸 작품마다 만화사에 길이 남을 대작이 되고는 했다. 박광현 선생님과 한국 만화 황금 시절은 물과 물고기 사이였다. 그 시절은 마치 선생님을 위한 시기였던 것 같았고, 선생님은 한국 만화 황금 시절이 있어 제대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부에 의해 강제로 황금 시절이 막을 내리면서 선생님의 시절도 같이 끝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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