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9:14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2.16 2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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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71)
 우리가 이 수창의원 별채에서 한창 뛰고 놀 적에는 상호와 영호도 신나게 노는 데 한몫하고는 했다.

 아이들의 누나인 양자는 풍금을 쳐야 하는데 아이들 난리를 쳐대니 시끄러워 풍금은 못 치고 건반만 만지며 아이들이 노는 것을 빙그레 웃으며 쳐다보곤 했다. 양자는 나와 같은 반이고 교회도 같이 다니니 무척 가깝게 지낼 수 있었지만, 그 당시는 남녀칠세부동석이라면서 어린이들이라도 남녀는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그 당시 양자는 삼천포 또래 여학생 중에서 최고 미인이었다. 그것은 나의 주관적인 기준이 아니라 남자아이들이 양자를 아내로 삼겠다고 침을 흘리고 있었고, 실제로 양자는 자라서 서울 중앙대학에서 메이퀸으로 뽑히기도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미모는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실은 양자를 좋아했다. 한 번씩 세상 사람들이 다 죽어 버리고 양자와 단둘이 남았으면 하고 공상도 해봤다. 그러면 양자는 꼼짝없이 내 각시가 돼 줄 거라고 생각했고, 또 양자와 여객선을 타고 가는데 배가 난파를 당해 다른 사람들은 다 죽고 둘만 남아 어느 무인도에 흘러갔으면 하는 상상도 해봤다. 그러나 양자는 너무 높은 나무라 내가 올라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일찌감치 내 각시 삼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나 삼천포 시내 또래 자식들은 끝까지 양자를 포기하지 못하고 헛꿈을 꾸고 있다. 양자는 그 자식들 소원을 다 들어주려면 몸이 백개도 더 있어야 할 판이다.

 우리는 그렇게 수창의원에서 난리를 치며 놀다가도 상호 아버지가 교회에서 저녁 예배를 마치고 돌아올 시간이 되면 깨끗이 밖으로 나오곤 했다.

 52. 꿩이 땅바닥에…

 그러던 어느 수요일 밤 그날도 상호의 부모님이 예배를 하러 나간 사이, 우리는 예나 다름없이 별채 안을 정신없이 뒤집고 있었는데 상호 아버지가 무엇을 빠트리고 가셨는지 중간에서 집으로 되돌아오신 것이다. 돌아오던 상호 아버지는 자기 집에서 아이들이 고함을 쳐대는 소리가 100m 밖에서도 생생히 들려 그만 화가 머리끝까지 오르셨다.

 얼마나 화가 나셨는지 집에 들어오기도 전에 “야 이놈들아! 집 안에서 뭣들하고 있는 거야!”하고 고함을 빽 질렀다. 이 소리에 놀란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큰 방에 있는 장롱 안으로 후다닥 숨어 버렸다.

 상호 아버지는 현관 앞에 아이들 신발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자, 다시 고함을 지르면서 방 안으로 들어섰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상호 아버지는 예배 시간이 다 되어 아이들을 찾겠다고 집 안을 뒤질 틈이 없었다. 그래서 마루로 나와 큰소리로 “이놈들아 네놈들이 어딘가 숨어있는 줄 알고 있다. 꿩이 땅바닥에 대가리를 쳐박았다고 숨은 줄 아느냐. 신발도 보고 소리도 들었단 말이야”라고 말하더니 그대로 집 밖으로 나가셨다.

 우리는 민첩한 행동으로 면전에서 야단을 맞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옷장을 기어 나오던 우리는 긴장해서 그런지, 좁은 장롱에 눌려서 그랬는지 얼굴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가 돌아간 후에 상호 아버지는 상호와 영호를 앉혀 놓고 동네 아이들을 집 안으로 끌어들여 온통 쑥대밭으로 만든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 다른 아이들은 아무 관심도 없었다. 너무 어려서 그랬던가? 다음 날은 아무 일 없었던 냥 수창의원 아이들과 동네 아이들은 또 어울려 놀기에 바빴다.

 “꿩이 땅바닥에 대가리를 쳐박았다고 숨은 줄 아느냐!” 참 명언이다. 나는 그때 개구쟁이 시절을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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