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3:31 (토)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2.05 0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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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63)
 만화사 연구가 가운데 ‘복수의 칼’이 다른 작품보다 나중에 나온 것으로 아는 분들이 계신데 그것은 ‘복수의 칼’이 초판 몇 년 후에 낱권들을 모아 제판을 하는데 제판을 한 날짜를 초판으로 오해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들보다 앞서 김종래 선생님의 작품이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된다.

 1999년. 나도 만화가로서 한 위치를 지키고 있을 무렵인데, 만화가들의 모임에서 김종래 선생님을 만나 선생님의 작품의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나 : 선생님 붉은 땅을 어떻게 집필하게 된 것입니까? 선생님 : 그 작품은 내가 그리고 싶어 그린 작품이 아니라 군 복무 시절에 국방부 홍보실에서 근무했는데 그때 사령부에서 만화를 제작하라는 지시가 있어 그린 작품이오. 그때 그저 위에서 내용을 주면 그대로 그렸기에 기억은 잘 안 나오. 나 : 다음 작품은 복수의 칼인데 그것은 어떤 계기로 그린 것입니까? 선생님 : 나는 실은 꼭 만화가가 되고자 한 적은 없소. 제대를 했는데 직업이 없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만화를 그린 것이오. 나 : 두 작품이 선생님의 데뷔작이신가요. 선생님 : 아니오. 그보다 더 먼저 제작된 책이 있소. 나 : 그럼 그 작품은 어떤 작품이었나요. 선생님 : 졸작이지요. 습작이라 할까 ‘이설(異說) 춘향전’이라는 작품인데 어느 출판사에서 만화를 그려 오면 돈을 준다길래 그려다 주었는데, 돈은 받았지만 성적이 신통치 않았는지 다시 그려 오라는 연락이 없어 입대한 거지요.(중략)

 당시 만화광이었던 나는 선생님이 ‘붉은 땅’ 전에 또 다른 작품이 있었다는 사실에 내심 놀랐다. 선생님은 ‘이설 춘향전’에 대해 과소평가하셨다. 내 생각도 ‘이설 춘향전’은 ‘붉은 땅’ 이전의 작품이기 때문에 그림체가 미숙해 보였을 것이고 또한 제목마저 낯설어 세인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만화계의 영웅이셨던 김종래 선생님의 데뷔작 ‘이설 춘향전’이 남아있다면 과연 어떤 대접을 받을지 궁금하다.

 43. 김종래 선생님의 작품들

 선생님은 만화가로서 천재이시다. 내가 그분과 독대할 때 자기는 어릴 적부터 꿈이 만화가가 아니라고 하셨고, 또 대화를 들어 보면 만화를 그리시는 자세가 어떤 명작을 그려 보겠다는 것이 아니고 그저 생활비를 벌겠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작품에 임하셨다고 한다.

 첫 작품은 흥행에 실패할 정도로 수준이 낮았고 붉은 땅은 정성껏 그렸지만 대가의 면모는 볼 수 없었고, 다음 작품 ‘복수의 칼’은 선이 많이 들어가 그림 자체가 산만하기까지 한 작품으로 선생님의 특유한 그림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다음 작품 ‘암행어사 박문수’에서 아주 특이한 화풍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또 다음 작품 ‘엄마찾아 삼만리’에서 선생님 특유의 화풍을 자리잡았다. 불과 서너 작품 만에 완벽한 화풍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천재가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이다.

 ‘복수의 칼’ 이후 한국은 만화 황금기를 맞이하게 됐고, 그때 출간된 ‘만화세계’ 잡지는 황금기의 중심이 되어 만화계를 이끌어 가게 됐다. 그때 선생님은 만화세계에 암행어사 ‘박문수 전’을 연재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되면서 한국 최고의 인기 만화가로 등극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 잡지 연재작품 ‘엄마찾아 삼만리’는 남녀노소 인기를 얻어 범국민적 작품으로 한국 최고의 명작 중의 한 작품으로 꼽히게 된다. 그 후 ‘울지마라 은철아’, ‘갈매기는 울어도’, ‘눈물의 지평선’ 등의 작품을 만드셨다. 그리고 잡지사 연재물을 엮어 만든 숙향전(숙향 낭자전?), ‘충신비사’, ‘마음의 왕관’은 그 책의 모양이나 내용으로 봐서 우리나라 만화 역사상 최고로 잘 만들어진 만화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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