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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이동근 힐링스토리-금성빈 바이올리니스트
여행작가 이동근 힐링스토리-금성빈 바이올리니스트
  • 이동근
  • 승인 2014.01.26 2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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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의 선율, 영혼까지 달래죠”
▲ ‘풍경 안으로 걸어가는 음표들’이란 타이틀로 합주를 하고 있는 금성빈 씨.
바이올린과 호흡하며 음악계 인맥 없이 당당히 활동

 바이올리니스트 금성빈(34) 씨는 전도유망한 아티스트이다. 그는 독일에서 오랫동안 다양한 음악활동과 유학생활을 마치고 모국으로 돌아와 몇 년 만에 한국의 대중들 앞에 서는 것이라 무척 설레고 떨린다며 사춘기 소녀처럼 미소를 지었다. 지난 24일 갤러리카페 움에서는 ‘풍경 안으로 걸어가는 음표들’이라는 타이틀에 맞춰 ‘Piano 김란, Guitar 주윤석, Violin 이에스더, 김우영’ 등과 함께하는 연주회가 열렸다. 한 시간 남짓 4곡의 연주로 구성된 연주회에서는 필자 역시 눈을 감고 공연을 감상했다. 현장에서 처음 들어보는 날 것 그대로의 바이올린의 음색에 빠져든 시간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그를 만나 다양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 작은음악회였던 이날 공연에는 관객들 50여 명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바이올린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와 자신의 음악인생에서 가장 영향을 준 아티스트는 누구인가요?

 “처음부터 바이올린을 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유년기 대부분을 작은 시골 마을에서 보내게 됐는데 마땅한 놀이시설이 없다 보니 교회가 유일한 저의 놀이터였죠. 그곳에서 피아노도 치고 노래도 부르면서 자연스레 음악을 익혔어요. 부산으로 오자마자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시작했는데, 제 남동생이 하기 싫다고 내팽개친 바이올린을 우연히 제가 잡게 됐어요. 순식간에 매료됐고 그 후 다른 음악공부는 다 그만두고 바이올린에만 집중을 했어요. 청소년시절 한창 바이올린에 빠져 있었을 때쯤 정경화 바이올리니스트가 TV에 자주 나오곤 했었는데, 그녀의 선율과 표정에서 나오는 음악에 대한 강한 열정은, 저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한번은, 부산에서 정경화 님의 독주회를 갔었는데 연주가 마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새벽까지 홀린 듯이 연습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나네요.”

 -한국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살아가기 위해 다양한 분들의 도움이 있었을 것 같고, 그 과정들이 궁금합니다. 어떤 과정들을 거쳐 오셨는지 진솔하게 답변 부탁드립니다.

 “저는 귀국한 지 얼마 되질 않았고 대부분의 활동을 독일에서 했어요. 공부와 오케스트라 생활을 병행하고 있었죠. 직장과 학교 간의 거리가 기차로 4시간이 걸리는 꽤 먼 거리였는데 늘 학교와 연주스케줄이 겹쳐서 곤란한 경우가 참 많았지만 다행히도 스승님께서 늘 개인시간을 따로 내셔서 제 스케줄에 맞춰 레슨을 해주셨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닌 걸 알기에 늘 감사했어요. 또 같이 활동하던 연주자 중에 한국사람은 제가 유일했죠. 제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다들 따뜻하게 대해준 것도 잊을 수가 없어요. 스승님과 동료연주자들의 이런 배려 덕분에 마음고생 하지 않고 학업과 연주활동 모두를 소화할 수 있었던 것에 너무 감사드려요.”

 -바이올린 이라는 악기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 듣고 싶습니다.

 “바이올린을 처음으로 봤을 때 인간의 바디와 흡사하다고 생각했어요. 배우게 되면서 소리 또한 인간의 목소리를 가장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악기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게다가 정확한 음정을 가진 건반악기와는 달리 스스로 음정을 만들어 가는 것과, 심장 가장 가까운 곳에 올려놓고 연주하는게, 저는 마치 바이올린이 같이 호흡하고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더 특별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보통 사람들은 바이올린 선율이라고 하면 아름다운 음색을 주로 떠올리곤 하는데, 기쁨ㆍ슬픔ㆍ분노ㆍ익살ㆍ연민ㆍ회개 등 인간의 감정 깊숙이 소리로 담아낼 수 있는 악기에요. 저희 아버지는 마음이 울적해지실 때 저에게 연주를 시키시곤, 눈물을 자주 흘리셨어요. 왜 우시느냐고 묻는 어린 제게 “마음에 위로가 되어서…”라고 대답하셨는데 이 대답이 이후 제가 바이올린을 하는 이유가 됐어요. 심금을 울리는 바이올린의 음색은 이렇듯 사람의 영혼을 달래는 큰 위력이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최종 목표는 뭔지 궁금하며 예비 바이올리니스트를 위해 조언을 하고 싶다면 무엇일까요?

 “클래식에 큰 관심이 없었던 시민들도 쉽게 흥미를 가질수 있는 새로운 시도의 창의적 연주를 많이 계획하고 있어요. 전혀 다른분야 예술가들과의 콜라보레이션 무대 같은 것들 말이에요. 이런 무대들로 시민관객들에게 클래식감상과 더불어 재밌는 볼거리들도 선사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음악가를 위한 음악이 아닌, 음악하지 않는 사람을 위한 음악을 하는 게 제 꿈이에요.

 저희 집안을 통틀어 제가 유일한 음악가에요.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는 형편에 음악계에 인맥 없이 바이올리니스트로서 활동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저는 특별히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음악을 하고 있는 어린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진정한 마음으로 음악을 대한다면 음악을 향한 그 열정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음악을 해야 하는 목적과 방향을 제시해 준다고.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스스로 감사하는 마음을 늘 가지면 좋겠어요.”

 그는 공연이 성황리에 끝이 났지만 한국에서 오랜만에 하는 공연이었기에 매우 긴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심성의껏 긴 시간 동안의 인터뷰에 힘들어하는 내색없이 진심을 다해 답변을 해줬다. 진정한 프로의 자세를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으며 그를 통해 클래식이라는 음악에 무지했었던 나 자신에게 조금은 고정관념에 갇혀 있던 틀을 깨도록 해준 감사한 인터뷰였다. 그는 오는 2월 5일 양산시 평산동 50번지에 위치한 ‘Be My Friend’ 카페에서 두 번째 연주회를 준비하고 있으며 따뜻한 봄날이 찾아오는 4월쯤에 귀국독주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제는 자신의 모국에서 꾸준히 음악활동을 하고 싶다는 그를 관심 있게 지켜봐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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