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23:15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1.21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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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55)
 멀어지는 괴물을 자세히 보니 괴물이 아니라 노루였다. 풀을 뜯어 먹고 있다가 우리가 달려오자 노루가 놀라서 공중에 튀어올라 도망친 것이다.

 다행히 괴물이 아니었지만 우리는 계속 도망을 쳐 산 정상에 올랐다. 백사가 따라오진 않은 것 같았지만 안심이 되질 않았다. 전설에는 백사가 사람을 한 번 보면 쉽게 놓치지 않는다는데 좀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는 곧 큰 위기를 맞았다.

 정상에 오른 아이들은 잠시 숨을 고르고 있고, 분명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였다. 그런데 북쪽 하늘에서 구름 한 점이 각산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구름은 점점 커지더니 어느새 이이들을 덮쳐버렸다. 산이 갑자기 깜깜해졌다. 바로 앞의 아이만 어렴풋이 보이고 조금 떨어져 있는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세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으로 변한 것이다. 아이들은 백사가 요술을 부려 날씨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하니 더 무서워졌다.

 저쪽에서 한 아이가 “무서워!”하고 소리를 지르자 다른 아이는 그만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들은 공포에 떨며 어쩔 줄 몰랐다.

 그러나 공포는 잠시였다. 곧 날씨가 밝아지더니 해가 나오고 멀쩡한 날씨가 됐다. 아이들을 덮쳤던 암흑은 다시 구름이 되어 반대쪽 하늘로 멀어져 갔다.

 모두 뛰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 한참이나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노루와 구름이 나타나서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백사의 간계인 줄 알았지만, 먼 훗날 다시 생각하니 그냥 우연일 뿐 이라는 것을 알았다.

 백사를 만났던 그 순간 도망치는 아이들 앞에 노루가 튀어나올 확률과 또 얼마 후에 구름 한 점이 아이들을 덮치는 우연은 로또 복권 1등 당첨되는 일보다도 더 어려운 확률이다. 그때 나는 복권에 당첨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확률을 경험해 본 것이다.

 50년 세월이 지난 지금 각산은 공휴일이면 등산객들로 붐비는 산으로 변했고, 평생 자랄 것 같지 않던 작은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용이 하늘로 올랐던 그 바위는 어느 숲 속에 파묻혀 있는지 찾을 길이 없고 백사가 살았던 큰 바위도 기억으로는 찾을 길이 없다. 그때 그 백사가 새끼를 낳아 대를 이어 왔으면 각산에는 지금도 백사가 살고 있을 것이다.

 35. 보건병원 앞에 버려진 여승(女僧)

 1950년대 삼천포 시내에 있는 병원들은 거의 집 주위에 있었다. 우리 집과 등을 같이 하는 수창의원, 집 앞의 서울의원과 보건병원, 정면 대각선으로 동아의원, 그리고 집 뒤에 박치과ㆍ중앙치과 등이 있었다. 또 집에서 서쪽으로 300m쯤 가면 ‘양의사’가 있었다.

 그러니 우리 동네는 병원 동네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병원들은 모두 식구들과 생활을 하면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어 집집마다 아이들이 있었고, 수창의원ㆍ박치과ㆍ중앙치과ㆍ서울병원 집의 아이들은 우리 팀의 멤버다.

 그런데 집 앞에 있는 보건병원은 병원에 식구들은 살지 않고 환자만 치료하는 병원이었다. 원래 이 병원은 시청에서 지원받는 ‘삼천포 보건치료소’였는데 어느 날 원장선생님이 시청과 관계를 끊고 개인병원인 ‘보건병원’으로 상호를 바꿨다.

 이 병원 의사는 내가 보기에는 좀 이해 못 할 구석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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