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8 15:09 (목)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1.16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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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52)
 야단났다. 대호 매형이 또 우리집 점포에 찾아와서 아버지에게 따지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쏟아진다.

 동네 어른들은 참 이상했다. 나에게 야단칠 일이 생기면 꼭 아버지에게 찾아가서 야단들이다. 어떤 분은 아버지에게 “당신 아들이 우리 아들을 눕혀놓고 머리를 땅에 박았다”고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아주머니는 “당신 아들과 우리 아들이 싸우는 걸 봤는데 당신 아들이 붕붕 날면서 우리 아들을 발로 찼다”고 하기도 했다.

 어느날은 우리집 지붕에 ‘쿵-쿵-’하는 소리가 나서 아버지가 나가보니 어떤 아이가 우리집 지붕에 돌을 던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야단을 치자 그 아이는 “당신 아들에게 맞아서 분풀이한다”고 고함을 질렀다. 나는 아버지가 나 때문에 욕을 먹을 적에 대부분 집에 숨어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내가 집에 있는 줄 알면서도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나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그 교훈은 ‘기죽지 말고 살아라’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사회에 나와 살면서 늘 당당하게 살았다. 관중들 앞에서 한 마디로 큰 덕을 보기도 하고, 또 한 마디 잘못해 뺨을 맞기도 했다. 어떤 어려운 일에도 겁 없이 덤벼들어 크게 성공하기도 하고, 또 크게 망한 적도 있었다. 나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 하는 일에 소신이 있으면 그대로 행동해 왔다. 그런 기백은 아버지의 말 없는 교훈 덕이었다.

 남의 결혼사진 망쳐 놓은 죄로 태호 매형이 또 우리 아버지를 찾아올까 조바심을 내면서 하루하루 견디는 데, 일주일이 넘어도 찾아오지 않아 그 뒤론 안심하고 지낼 수 있었다.

 나는 중학생이 됐고, 공교롭게 태호 매형은 우리 학교에 영어 선생님으로 부임했다. 나는 혹시나 하고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우리 반은 가르치지 않으셨다. 하루는 학교를 가고 있었는데 반대 쪽에서 영어 선생님이 오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모자 앞창을 푹 눌러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여 모르는 척하고 선생님 옆으로 지나쳤다. 곁눈으로 슬쩍 보니 선생님은 나를 힐끔 보고는 아무 일 없는 듯 지나가는 것이다. 위기를 면했다.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어느날 방과 후 학생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진삼도로를 걸어 삼천포 시내 쪽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나는 버릇처럼 길가의 돌멩이를 차면서 가고 있었다. 진삼도로는 비포장도로라 시에서 한 번씩 자갈을 깔아 놓는다. 이 자갈들이 처음에는 버스가 지나가면 바퀴에 돌이 튀기도 하지만, 며칠 지나면 자갈들이 흙에 박혀 도로가 단단해지고는 했다. 그래도 흙에 안 박힌 돌은 도로에 나뒹굴고 있었는데 나는 이런 돌을 차는 것이다.

 이때 이 돌 하나가 앞서 가는 다른 반 친구 다리에 맞은 것이다. 이 친구는 나에게 “왜 나를 향해 돌을 차고 그래? 나에게 유감있어?” 하면서 따지는 것이다. 나는 “그게 아니고 아무 생각 없이 찬 돌인데”라고 변명했지만 그 친구는 수긍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정정당당히 싸우기로 했다. 학교에서나 동네에서 두 소년이 시비가 벌어지면 잘잘못은 싸움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기는 사람의 말이 정의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싸움 잘하는 아이의 행동은 늘 정의이고 못하는 아이는 늘 피해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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