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1:08 (토)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1.13 2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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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49)
 31. 통곡

 나는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어머니가 나와 형을 각산 밑 개울가에 있는 교회에 다니라고 보내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 다니던 교회를 서울에 와서도 계속 다녔고 이제는 서울 신림동에 있는 왕성교회에서 2000년에 시무 장로로 선출돼 아직도 왕성교회에서 시무 장로로서 봉사하고 있다.

 삼천포 시절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새벽 기도를 다녔는데 그 때문에 수창의원 상호엄마인 권사님에게 칭찬도 받고 교회 목사님에게도 칭찬도 받았다. 또 나중에는 크리스마스 교회에서 성경책을 상품으로 받기도 했다.

 이 교회 목사님은 한 번씩 실안의 나환자 촌에 가서 예배로 인도하고 그들의 생활도 돌봐 주고는 하셨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어느날 새벽 기도에 가서 예배를 보는 도중에 목사님이 신문을 보여주며 어떤 사건을 학생들에게 일러줬다.

 나환자 촌 사람들과 그 인근의 섬 주민들이 ‘비토’라는 섬 개관 문제로 다투다 어느날 섬 주민들이 대창과 낫과 괭이 등으로 무장해 나환자 20명 이상을 죽이고 50여 명의 중상자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사건이 진주 모 신문에 게재됐다고 하면서 신문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는 돌아가신 분 중에 예수님을 믿는 집사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죽어서도 얼굴에 환한 광채가 나는 것이 신비했다”고 하시며 우리에게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하셨다.

 아무리 두 마을에 분쟁이 있었다 해도 손가락이 없어 막대기도 못 잡는 나환자들을 습격해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상처 입혔는데, 인근의 지방 신문에 날 정도로 큰 사건이라고 일러주고 있다니. 그리고 죽은 분의 얼굴에 광채가 나서 신비했다고만 말하다니.

 이들을 토살한 섬 주민들이 나쁘다. 어떻게 고발해야 한다는 등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2014년 지금 그런 사건이 터졌다면 전국이 떠들썩하게 검찰에서 조사단까지 파견했을 것이다. 외신들도 보도를 할만한 사건인데 그저 지방 신문 보도쯤으로 넘기다니 너무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그때 교회에 힘 없고 세상 모르는 아이들은 이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그저 몸을 떠는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라 적군들을 토벌하는 것, 철천지 원수 마을이라 복수혈전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깟 땅 몇 평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고작 300명 남짓 사는 동네에 사상자가 70여 명이 넘었다니 가히 마을 주민 대부분이 참사를 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쩌다 병에 걸려 일반 사람들 하고도 같이 어울려 살지 못해 외진 곳에 자기 처지와 같은 사람들과 모여 살고 있는 것인데 조금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쓰지 못하는 불모지 땅에 개간한다고 섬에 건너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섬 주민들이 이렇게 떼로 몰려와서 자기 동네 사람들을 죽이고 상처를 입힐 수 있단 말인가. 피비린내 나는 현장에서 살아남은 환자들은 통곡을 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전해들은 나는 ‘오솔길에서 밭을 갈던 아저씨가 살아있을까’라는 의문과 ‘나에게 토끼를 사갔던 그 아주머니는?’… ‘검은 안경을 쓰고 다니는 멋쟁이 아저씨는 살았을까’ 등의 의문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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