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의 신사설치를 살펴보면 1876년 문호개방과 더불어 일본이 한국을 침략키 위해 신도(민간종교: Shintoism)를 침투시켰다. 1882년 신도를 ‘국가의 제사’로서 종교와 분리조치를 취해 교묘히 타종교를 지배, 통제했고, 이를 통해 식민지 지배를 효과적으로 하게 됐다. 이어 총독부는 1915년 ‘신사사원규칙’과 1917년 ‘신사에 관한 건’을 공포하고, 1925년에 조선신사가 ‘조선신궁’으로 개칭됐다. 여기에 반발한 기독교계 사립학교들은 1937년부터 일부는 폐교되고 일부는 순응했다. 김해출신의 한상동(韓尙東), 거창출신의 주남선(朱南善) 등은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폈으며, 이런 과정에서 조용학, 최상민 등은 순교했다.
이후 총독부에서 신궁(神宮) 2곳, 신사 77곳, 면단위 신사 1천62곳을 세웠다. 이외 각종학교에 호안덴(奉安殿)을 세우고, 가정에도 가미다나(神棚)라는 신단(神壇)까지 만들어 아침마다 참배하도록 했다. 1940년에 신사참배에 동원된 수는 약 215만 9천명, 1942년에는 약 264만 8천명에 이르렀다. 민간인들의 신사참배 거부운동으로 각 가정에 나눠준 신궁대마(神宮大麻: 일종의 신주ㆍ부적)를 바로 폐기하거나, 벽에 밥풀 또는 압핀으로 붙여뒀다가 ‘왜놈의 귀신’이라 해 폐기시켰다. 1945년 8월 광복이 되자 민간인들이 신사를 방화 파괴시켰으며, 그 터는 대부분 공원, 학교, 교회 등의 공공장소로 이용했다.
이같이 한ㆍ일 양국 간에 ‘신사’에 대한 역사적 원한이 얽혀 있는 가운데, 구랍 26일에 아베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전격 단행했다. 이에 미국은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실망했다’고 하며, 중국은 ‘아베총리는 이성을 잃은 편집광이다. 일본 지도자가 중국과 아시아의 전쟁 피해국 인민의 감정을 잔인하게 짓밟고 역사적인 정의와 인간 양심에 공공연한 도전을 한 데 강력한 불만을 표시하며 일본 측에 강력하게 항의한다’고 밝혔다.
지난 2001년 8월 13일 일본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가 야스쿠니신사의 참배 문제로 주변국의 항의를 받는 중 12년만인 구랍 26일에 아베신조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전격 단행했고, 금년 1월 1일에 신도요시타카(新藤義孝) 총무상이 또 참배했다. 이에 우리는 ‘과거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범자를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를 고위 정치 지도자가 참배할 경우, 그 지도자의 역사인식에 의구심을 갖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더구나 우리와의 독도(獨島ㆍ일명: 다케시마) 문제로, 중국과는 댜오위따오(釣魚島ㆍ일명: 센까꾸) 문제로 둘러싸고 있는 와중에 몰지각한 행위를 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그 신사참배를 비난일색어조로 계속되는 보도는 자칫 피해의식으로 비춰질 수 있어, 냉정한 비판과 함께 국익에 부합되는 노력이 필요하며, 신사참배 비난하는 사안에 따른 실리는 챙기는 별도의 보도가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