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은 교육계 원로로서의 활동도 꾸준히 하셨으며 지난 9월 역대 교육부 장관들과 ‘역사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사 교과서논란이 정쟁의 도구가 되고 있음에 큰 우려와 유감을 표명하셨다.
저서로는 ‘서양철학사의 이해’, ‘인문학 강의’, ‘철학 에세이’, ‘전환기의 대학’, ‘플라톤 철학의 이해’, ‘비트겐슈타인 연구’ 등이 있다.
필자는 박영식 회장님이 교육부장관 재직 시 몇 번 뵌 적이 있다. 당시 김해는 수많은 학교가 있었지만 문화활동을 할 강당 하나가 없는 열악한 교육환경이었다. 따라서 학교에 강당을 건축하는 것은 김해시 지역 내 각 급 학교의 소망이었고, 김해 교육계는 물론이고 김해시민의 숙원사업이었다. 나는 그 중차대한 임무를 가지고 장관님을 집무실에서 만나게 됐다. 교육부의 수장이셨던 고인은 처음 만나는 시골학교 교장을 마치 고향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게 맞아 주시며 다정하게 대해 주셨다. 이에 필자는 김해의 열악한 교육환경과 현실 등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드렸다. 이때 장관님께서는 필자의 설명을 끝까지 경청하시며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고, 이것이 김해지역의 숙원사업이 해결되는 단초가 됐다.
이후 다소 시일이 걸리긴 하였지만 1999년 김해시 연지공원내의 약 2천여 평의 부지 위에 아름답고 멋진 다목적학생체육관이 건립돼 오늘날까지 김해시 지역 내 학생들뿐만 아니라 도내 모든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다양한 목적으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또 김해건설고등학교 기숙사를 리모델링할 때 거액을 지원해주셔서 학생들의 면학분위기 조성과 생활지도에 크게 도움이 됐다. 이에 필자는 김해시민들과 도민들이 소중하게 사용하고 있는 김해학생체육관 건립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고 박영식 학술원회장님의 고향에 대한 애정을 알리고 고인을 추모하고자 한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고인은 김해에서 출생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많은 일을 하셨다. 그러면서도 고향인 김해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후학들을 소중히 여기셨다. 특히 고인의 모교인 칠산초등학교 교정에는 고인의 고향 사랑이 얼마나 각별했는지를 보여 주는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하기에 필자는 우리 김해 교육을 크게 걱정해주신 고인의 그 인자하고 다정하셨던 모습들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김해를 사랑하셨고 이제 김해로 돌아오신 박영식 회장님. 고향 선영에서 영면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