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08:09 (일)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3.11.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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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9)
 딱지본이 나오기 이전에는 책이란 것은 창호지에 손으로 글을 쓰든지 아니면 나무판이나 쇠판을 만들어 글자를 찍어 만들었다. 그런데 이후의 책에서는 새로운 스타일의 신식 책이 나왔는데 그것을 ‘현대 소설’이라든지 ‘신식책’이라는 명칭으로 통했다.

 그러니 딱지본이라 하지 않고 ‘신식책’ 혹은 ‘현대소설’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 것이다.

 신식책 표지에 동양화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빨간색이나 아니면 빨간색 파란색 정도로 색을 입혀 만들고 종이는 갱지로 16쪽 정도에 4.5판 정도의 크기로 책을 만들었다.

 책 내용은 주로 심청전, 장화홍련전, 배비장전, 이춘풍전, 춘향전 등 고전 소설과 나름 신소설 격인 신식 소설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고전 소설이 주로 팔렸던 좌판에 그림 소설 즉 이야기가 있는 만화도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신식 책 좌판의 어느 책 몇 권의 표지에 그림 즉 삽화체 만화로 그린 표지가 눈에 띈 것이다.

 그 책 표지의 그림은 테가 넓은 갓을 쓰고 흰 두루마리를 입은 사람이 부채를 살랑살랑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었고 그 앞에는 많은 일본 배가 바람에 휘날려 파선되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 문제의 만화가 그려진 신식 책은 어느 동양화 화가가 그림을 그린 것 같은데 제목은 ‘신판 홍길동전’이었다 그 홍길동전은 한 쪽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또 다른 한 쪽은 전부 소설로 채워진 방식이었다. 나는 그 책에 매료되어 책판 앞에 쭈그리고 앉아 책 주인을 눈을 한 번 쳐다보고는 책을 한 장 넘겼다.

 그리고 다시 아저씨 얼굴을 쳐다보았다. 눈치를 보니 아저씨는 야단을 칠 줄 알았는데 그냥 내 얼굴만 쳐다보고만 계셨다. 그래서 나는 한 장 더 넘겨 읽어 보았다. 그리고 아저씨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아저씨는 이상하게 야단을 치시지 않았다. 내가 책을 다 읽은 동안 내 얼굴만 쳐다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유명한 명작 만화를 돈도 내지 않고 다 읽어 볼 수 있었다.

 책의 내용은 임진왜란이 시작되어 왜놈들이 삼천리강산을 수탈하자 무덤에 있던 홍길동이 나라 걱정을 하여 놀랍게도 무덤을 깨고 살아 나오는것 이었다. 그리고 창이 넓은 갓을 쓰고 긴 자락의 두루마기를 입고 고품위의 자세로 밀려오는 왜구의 배를 향하여 살랑살랑 부채를 부쳐대면 그 부채 바람은 태풍이 되어 왜선들을 다 날려 버리고 온갖 재주를 부려 왜놈들을 이 땅에 몰아낸다는 이야기인데 정말 신나고 통쾌한 내용이었다.

 나중에 나는 만화가 시절 어문각에 거래하다 어문각이 문을 닫자 곧이어 만화가 김영하 선생이 출판하던 출판사에 이 ‘신판 홍길동’ 내용을 각색하고 원고를 제작하여 출판하였는데 이 작품이 그 출판사에서 판매 상위에 들어 내가 김영하 선생에게서 사를 받은 적도 있다.

 또 이 신판 홍길동은 나중에는 거의 2000년 무렵인가에 한국 희귀도서 전시장에 전시돼 큰 인기를 모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1945년과 1950년 사이에 제작된 원래의 오리지널 책은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즉 어느 박물관에서 관람객에게 표지만 보여주고 있는 귀한 책이다.

 만화는 그렇게 시작해 보급되고 또 판매 부수가 늘고 자신을 얻어 가면서 제작 편수가 많아지고 생업으로 만화를 그리는 전문 만화가가 생겨났고, 또 일본 만화와 미국 만화도 해적판으로 나오고 서점과 대여점이 늘어나면서 탄탄히 자리를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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