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딱지본이라 하지 않고 ‘신식책’ 혹은 ‘현대소설’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 것이다.
신식책 표지에 동양화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빨간색이나 아니면 빨간색 파란색 정도로 색을 입혀 만들고 종이는 갱지로 16쪽 정도에 4.5판 정도의 크기로 책을 만들었다.
책 내용은 주로 심청전, 장화홍련전, 배비장전, 이춘풍전, 춘향전 등 고전 소설과 나름 신소설 격인 신식 소설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고전 소설이 주로 팔렸던 좌판에 그림 소설 즉 이야기가 있는 만화도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신식 책 좌판의 어느 책 몇 권의 표지에 그림 즉 삽화체 만화로 그린 표지가 눈에 띈 것이다.
그 책 표지의 그림은 테가 넓은 갓을 쓰고 흰 두루마리를 입은 사람이 부채를 살랑살랑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었고 그 앞에는 많은 일본 배가 바람에 휘날려 파선되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 문제의 만화가 그려진 신식 책은 어느 동양화 화가가 그림을 그린 것 같은데 제목은 ‘신판 홍길동전’이었다 그 홍길동전은 한 쪽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또 다른 한 쪽은 전부 소설로 채워진 방식이었다. 나는 그 책에 매료되어 책판 앞에 쭈그리고 앉아 책 주인을 눈을 한 번 쳐다보고는 책을 한 장 넘겼다.
그리고 다시 아저씨 얼굴을 쳐다보았다. 눈치를 보니 아저씨는 야단을 칠 줄 알았는데 그냥 내 얼굴만 쳐다보고만 계셨다. 그래서 나는 한 장 더 넘겨 읽어 보았다. 그리고 아저씨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아저씨는 이상하게 야단을 치시지 않았다. 내가 책을 다 읽은 동안 내 얼굴만 쳐다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유명한 명작 만화를 돈도 내지 않고 다 읽어 볼 수 있었다.
책의 내용은 임진왜란이 시작되어 왜놈들이 삼천리강산을 수탈하자 무덤에 있던 홍길동이 나라 걱정을 하여 놀랍게도 무덤을 깨고 살아 나오는것 이었다. 그리고 창이 넓은 갓을 쓰고 긴 자락의 두루마기를 입고 고품위의 자세로 밀려오는 왜구의 배를 향하여 살랑살랑 부채를 부쳐대면 그 부채 바람은 태풍이 되어 왜선들을 다 날려 버리고 온갖 재주를 부려 왜놈들을 이 땅에 몰아낸다는 이야기인데 정말 신나고 통쾌한 내용이었다.
나중에 나는 만화가 시절 어문각에 거래하다 어문각이 문을 닫자 곧이어 만화가 김영하 선생이 출판하던 출판사에 이 ‘신판 홍길동’ 내용을 각색하고 원고를 제작하여 출판하였는데 이 작품이 그 출판사에서 판매 상위에 들어 내가 김영하 선생에게서 사를 받은 적도 있다.
또 이 신판 홍길동은 나중에는 거의 2000년 무렵인가에 한국 희귀도서 전시장에 전시돼 큰 인기를 모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1945년과 1950년 사이에 제작된 원래의 오리지널 책은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즉 어느 박물관에서 관람객에게 표지만 보여주고 있는 귀한 책이다.
만화는 그렇게 시작해 보급되고 또 판매 부수가 늘고 자신을 얻어 가면서 제작 편수가 많아지고 생업으로 만화를 그리는 전문 만화가가 생겨났고, 또 일본 만화와 미국 만화도 해적판으로 나오고 서점과 대여점이 늘어나면서 탄탄히 자리를 잡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