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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열풍의 함정
교육열풍의 함정
  • 정창훈
  • 승인 2013.11.27 2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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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김해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행정학 박사

 유태인들이 즐겨 인용하는 교육 우화 중에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큰 부자들만을 태운 배에 한 사람의 랍비가 탔다. 부자들이 재산을 비교하고 있을 때, 랍비는 가장 부유한 사람은 나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여기서 보여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잠시 후 배는 해적의 습격을 받아 부자들은 가졌던 재산을 몽땅 빼앗기고 말았다. 배가 항구에 닿자 이 랍비의 지혜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 그는 교실을 마련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부를 얻을 수 있었다. 함께 여행을 하던 부자들은 완전히 몰락하였을 때 그제야 랍비가 한 말의 뜻을 알아차리게 됐다.

 지혜가 결여된 자는 모든 것이 결여돼 있다고 한 속담과 같이 지혜가 없는 부자는 결국 아무것도 안 가진 거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결코 단순한 우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있는 한 빼앗을 수 없는 것, 그것은 지식이다’라는 유태의 격언이다. 유태인은 자식에게 지혜와 지식을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어버이의 소임이라고 믿어왔다.

 우리나라 교육열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특히 높은 교육열이 한국을 자원도 없는 최빈국에서 세계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경제대국으로 만든 바탕이 됐다는 사실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프랑스 국영 TV는 한국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에서 교육열과 애국심을 한국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한국의 교육열에 대한 열렬한 예찬자다. “한국의 교육제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한국 학부모들의 교육열을 칭찬하며 미국 학부모들을 넌지시 자극하기도 했다.

 그런데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지난 7일 인터내셔널뉴욕타임스(INYT)가 사설을 통해 한국의 과도한 대입경쟁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INYT는 ‘아시아의 대입시험 광풍’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동아시아의 대입시험제도는 과거 대학정원이 소수일 때 필요했지만 그때보다 대입정원이 늘어난 현재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설은 이 같은 과열현상의 이유로 “상위권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한국과 일본의 어린 학생들과 가족들의 삶이 망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설 도입부에서는 동아시아의 과도한 입시열풍이라고 지적했지만 INYT는 주로 한국에 초점을 맞춰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사설은 “7일 60만 명의 고등학생들이 잔혹한 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데 한국에선 이를 초등학생 때부터 준비한다며 이 시험이 학생들의 직업, 심지어는 결혼까지 그들의 일생을 결정짓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신문은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폐해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아울러 한국은 고등학교 졸업생의 70% 정도가 대학에 진학한다며 “교육이 범국민적인 집착(national obsession)으로 나타나자 정부도 사회에 나타날 폐해들을 우려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한국 사회의 총 소비 중 12%는 교육비였으며 학부모들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5%에 맞먹는 금액을 교육에 쏟아 붓고 있다.

 그런 우리의 교육현실을 두고 한 스웨덴 일간지가 ‘결코 참고하지 말아야 한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최근 스테판 로벤 스웨덴 사민당 대표의 방한 관련 특집기사를 통해서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에서 주당 60시간 이상 공부하면서 혹사당하고 있다”며 “스웨덴 아이들이 결코 본받을게 못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우리도 우리의 교육이 무언가 잘못되고 있고 개혁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엄청난 압박을 받아 장기적으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그들의 경고를 결코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된다. 더 늦기 전에 우리 교육열의 밝은 부분만이 아닌 그늘도 살펴야 한다.

 자녀 교육을 위해 삶의 여유를 포기하고 있는 한국 부모님들은 자신의 삶의 여유뿐만 아니라 자녀의 정신건강까지도 포기하고 있지 않은가 돌이켜보아야 할 때이다.

 만약 부모가 아이를 위해 삶의 질을 포기하면서도 행복하다면 그것은 천만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부모들이 자신들을 희생하면서 아이들을 위해 투자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안타까운 일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란 아이는 아무리 많은 투자를 받고 부족함 없이 공부하고 자랐다고 할지라도 마음속의 죄책감으로 인해서 자존감이 낮아져 행복하지도 자기결정성이 높아지지도 않는다.

 교육의 문제가 학부모의 과도한 교육열에서 기인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학부모의 교육열은 기득권층에는 현재의 소유를 유지하려는 상속의 측면이 있고, 소외계층에는 상위계층으로의 진입을 위한 사다리의 의미를 갖는다.

 이제 부모들은 자녀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즉, 부모가 원하는 자녀의 미래 직업을 위해 공부를 시키는 것인가 아니면 자녀가 원하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 교육을 시키는 것인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자녀의 성공을 위해서는 자녀가 쉽고 잘하는 일을 찾아주는 지혜와 지식을 물러주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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