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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탐험가 도용복 ‘땅끝을 가다’ - 에콰도르
오지탐험가 도용복 ‘땅끝을 가다’ - 에콰도르
  • 도용복
  • 승인 2013.11.14 2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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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흔적 유럽양식 건물 즐비 행상 원주민 애환과 고단함 물씬

▲ 끼또는 스페인 식민지였던 여느 남미의 국가처럼 유럽의 도시 이미지를 가졌다.
“Amigo”(친구) 하며 접근 흑인 두 명에 캠코더 주며 위기 모면

 페루 리마 공항에서 3시간 안 걸려 도착한 에콰도르의 끼또 공항은 밤 10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마중을 나온 사람들로 분주하다. 한국의 공항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아담하고 깔끔하게 지어져 있다. 서둘러 숙소를 정하고 들뜬 마음에 혼자 시내로 나가려고 하니 이 시간에 혼자 나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호텔경비원이 말한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 정열적인 남미 사람들의 기질 탓인지, 술에 취해 서로 부딪치고 시비가 붙은 탓인지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도 들리고 경찰들도 왔다갔다 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혼자 다니기엔 위험하고 소매치기도 많다는 이야기를 오래전 남미에 왔을 때도 들었고, 여행제한지역으로 지정돼 있는 국가인지라 나름 걱정되는 점도 없진 않았다. 경찰들이 자주 보이는 걸 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원래 위험한 곳이라 외국인들에게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곳이 오히려 사람들은 더 따뜻하고 좋은 것을 내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밤에 혼자 다니는 것에 두려움은 없었다. 가족끼리 늦은 저녁을 먹는 사람들, 술을 마시며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 늦은 밤까지 분주하게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 끼또의 밤은 여느 도시의 밤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혼자서 신나게 끼또 시내 구경을 하고 호텔로 돌아가려고 택시를 잡을까 하다가 가까운 거리라 그냥 걸어가기로 결정하고 발걸음을 옮기던 순간이었다. 혼자 있을 땐 될 수 있으면 큰 길로 다니라는 말을 들은 터라 막 큰 길로 나서려고 하는데 양 옆으로 흑인 두 명이 따라 붙었다. 뒤쪽에도 한 명이 따라 붙었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왼쪽에 있는 덩치 큰 한 명이 “Amigo”(친구)라며 내 목에 팔을 걸쳐 어깨동무를 했다. 코끝으로 알코올 냄새가 확 풍겼다.

 ‘아뿔사! 이 녀석들 위험하구나!’ 조금 전 식당 앞에서 건들거리며 서 있던 녀석들인데 나를 힐끗 쳐다보는 모습이 심상치 않은 듯 했다. 한 명이 가던 길을 막아서고 또 한 명은 망을 보듯 두리번거리는 것이 여차하면 흉기라도 꺼내들 모양새다. 순간 많은 생각들이 오고갔다.

 예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처럼 태권도 자세를 취해 겁을 줘서 쫓을까, 냅다 도망을 칠까, 소리를 질러 볼까. 덩치가 산 만한 흑인이 어깨를 잡고 있어서 어느 것도 좋은 방법 같지가 않았다. 나를 잡고 있는 녀석의 눈빛은 시커먼 어둠속에서 눈동자만 하얗게 희번득거렸다. 마침 숙소에 배낭과 귀중품은 두고 온 터라 사진을 찍던 캠코더만 내어주자는 생각에 목줄을 풀고 캠코더를 내밀며 말했다

▲ 끼또의 어느 가족들과 함께.
 “Amigo, 내가 숙소에 짐을 다 두고 와서 지금 가지고 있는 건 이것 밖에 없다. 이 캠코더를 줄테니 그냥 나를 보내 달라."

 내가 순순히 물건을 내어 놓으니 녀석들도 더 욕심이 없는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냉큼 받아들고는 돌아서 가버렸다. 긴장이 풀리며 힘이 쭉 빠졌다. 호텔로 터벅터벅 돌아오며 생각해 보니 몸 하나 다치고 않고 이만한게 다행이다 싶었다. 놈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는 몰랐는데 호텔로 돌아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입고 다니던 여행 조끼의 옆구리가 길게 찢어져 있다. 아마도 옆에서 어깨동무를 했던 놈이 칼로 그었나보다. 순순히 캠코더를 내어 주었기에 망정이지 욕심을 부려 저항이라도 했다면 더 큰 불상사가 생겼으리라.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하니 등골이 섬뜩해진다. 이렇게 에콰도르에서의 첫날밤을 맞이했다.

 에콰도르는 스페인어로 적도를 뜻한다. 남미 북서부에 자리하고 있는 에콰도르는 그 이름처럼 적도에 위치하고 있다. 한반도의 1.5배가 조금 못되는 작은 나라이지만 바다를 접하고 있고 높은 안데스 산맥과 정글이 있으며 특히 찰스 다윈 때문에 유명해진 태평양 위에 떠 있는 갈라파고스 군도를 가진 나라이다.

▲ 시장에 나온 원주민과 함께.
 에콰도르도 여타 남미국가들과 마찬가지로 300년의 식민 피지배 기간을 거쳐 독립한 나라다. 지금의 에콰도르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물가가 올라서 서민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부의 부정과 부패 때문에 과도한 세금을 내어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질 않는데다 요즈음은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이 있다고도 하니 시민들은 매일 같이 데모를 하는 형편이다.

 에콰도르의 수도 끼또의 모습은 다른 남미의 국가와 크게 다른 점은 없다. 스페인의 식민지를 거친 국가이기에 유럽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옮겨 놓은 대성당과 국회의사당, 구시가지는 전형적인 스페인의 식민 도시와 같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사람들이다. 다른 남미 국가에 비해 원주민의 비율이 높은 이곳에서 거리 곳곳에서 전통 복장을 입고 고유 언어인 케추아어로 이야기하는 원주민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거리로 행상을 나오는 원주민들의 모습에선 고단함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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