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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물리학상 힉스ㆍ앙글레르 49년 전 존재 예언 후 영예
노벨물리학상 힉스ㆍ앙글레르 49년 전 존재 예언 후 영예
  • 연합뉴스
  • 승인 2013.10.09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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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극적 존재 확인… ‘힉스 입자’ 명명은 고 이휘소 박사
발표 1시간 늦어져… ‘이론적 엄밀성 시기상조’ 지적도
▲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영국의 피터 힉스 에든버러대 명예교수. 사진은 힉스가 지난 6월 에든버러대에서 찍은 것으로 에든버러대가 지난 8일(현지시간) 제공한 것이다. 연합뉴스
 우주 탄생의 열쇠인 ‘힉스 입자’의 존재를 49년 전 예견한 팔순의 물리학자 2명이 극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의 영예를 안았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지난 8일(현지시간) 힉스 입자의 존재를 1964년 각각 예견한 공로를 인정, 벨기에의 프랑수아 앙글레르(80) 브뤼셀 자유대 명예교수와 영국의 피터 힉스(84) 에든버러대 명예교수를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신의 입자’로 잘 알려진 힉스 입자는 수십 년 동안 가설로 취급되다가 올해 초에야 공식적으로 존재가 확인돼 두 사람은 즉각 과학계의 스타로 부상했다. 공식 발표 전까지 1순위로 꼽힐 정도로 그들의 수상은 이미 예견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경우 수상자 발표 하루 전인 7일 기사에서 “스웨덴 왕립과학원이 미치지 않는 이상 최근 10년을 대표할 이 ‘락스타적 쾌거’(rockstar event)를 인정할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고 예상했다.

 힉스 입자는 137억 년 전 우주가 태어난 순간인 ‘빅뱅(대폭발)’ 때 모든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고 사라진 존재로 ‘삼라만상의 근원’으로 흔히 불린다.

 이 입자의 존재는 우주 탄생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가설인 표준모형(Standard Model)에서 출발한다. 이 표준 모형에 따르면 우주 만물은 12개의 소립자(6개씩의 쿼크ㆍ렙톤으로 구분)와 4개의 매개입자(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 만유인력)으로 구성된다. 이런 소립자와 힘의 결합이 세상의 모든 물질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가령 원자핵이나 원자핵 속의 양성자 등도 이런 기본 입자가 만들었다는 뜻이다.

 힉스 입자는 자연현상에서 관찰할 수 없고 실험으로도 측정이 극도로 어려운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언 레더먼은 저서에서 힉스 입자를 ‘빌어먹을(Goddamn) 입자’로 불렀다가 출판사의 권유로 ‘신의(God) 입자’로 정정했고, 이 말은 애칭으로 굳어졌다.

 국제 연구진은 100억 달러(10조 7천400억 원)를 들여 스위스ㆍ프랑스 국경 지대에 길이 27㎞의 거대 강입자가속기(LHC)를 구축하고 입자를 인공적으로 충돌시키는 ‘초미니 빅뱅’ 실험을 거듭, 지난 3월 힉스 입자의 존재를 입증했다.

 힉스 입자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것은 질량이 있는 모든 입자의 생성 원리를 규명했다는 의미로, 더 나아가 우주 탄생의 원리를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가설인 표준모형의 완성을 뜻한다. 1869년 멘델레예프가 원소의 주기율표를 완성했듯이 힉스입자로 물리학의 표준모형이 완성된 것이다.

▲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벨기에의 브뤼셀자유대 명예교수 프랑수아 앙글레르가 지난 8일(현지시간) 브뤼셀 자유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학계는 힉스 입자의 입증이 과거 전자와 원자핵의 발견에 필적하는 성과라며 자연현상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등과학원의 고병원 물리학부 교수는 “힉스입자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인류는 태초 빅뱅이 일어나고 천억분의 1초 이후부터 우주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연구 의의를 설명했다.

 힉스 교수는 수상자로 확정된 뒤 “이번에 기초 과학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인 연구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올라가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고 AP통신이 전했다.

 힉스 입자 연구는 표준모델의 토대를 제공했으나 동시에 학문적 가치에 대한 논란도 많다. 힉스 입자가 성립시킨 표준 모델이 최근 연구에서 일부 반론이 제기되는 등 엄밀성이 부족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은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있기 때문이다.

 노벨위원회도 “힉스 입자의 발견이 훌륭한 성취이기는 하지만 표준 모델이 우주비밀에 관한 퍼즐을 푸는 마지막 조각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이날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이례적으로 예정 시간을 1시간 이상 넘기고 나서야 수상자를 발표, ‘막바지 격론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위원회는 발표 지연에 대해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힉스 입자 연구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애초 학계에 힉스 입자라는 명칭을 제안한 사람은 유명 재미 물리학자인 고(故) 이휘소 박사였다. 힉스 입자 발견과 관련된 여러 논문에는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와 최수용 고려대 교수 등 한국인 학자 20여 명이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가설적 존재서 실제 입자로 우주 탄생 비밀 풀 단서되다

 힉스입자는 기본입자들과 상호작용해 질량을 부여하는 가설적인 입자였다.

 피터 힉스가 지난 1964년 제안해 세상에 소개된 이 힉스입자는 물질에 질량이 생겨나게 해주는 입자로서, 그동안 가설로만 있을 뿐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다.

 빅뱅에서부터 우주가 탄생했다고 보는, 이른바 ‘표준모델’에 따르면 우주에는 힉스가 존재해야만 한다. 물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 세상이 기본입자(소립자) 12개(쿼크 6개, 렙톤 6개)와 힘을 전달하는 매개입자 4개(광자, 글르온 등), 기본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입자 1개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힉스는 이들 기본입자들과 상호작용해 질량을 갖게 해주는 독특한 입자다. 힉스는 기본입자에 질량을 부여한 입자로 설명하는데, 이는 힉스가 없으면 물질들이 어떻게 질량을 가졌는지 알 수 없어서다. 따라서 물리학자들은 그동안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를 확인하기 위해 애써왔다.

 힉스의 존재가 밝혀지면 중성미자, 전자, 쿼크 등 모든 물질의 근원인 기본입자들이 어떻게 질량을 얻게 되는지 드러나기 때문이다. 힉스를 ‘신의 입자’라고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힉스가 질량을 만들어내는 원리는 힉스장으로 설명된다. 광자가 전자기장과 관련된 입자이듯이 힉스 입자는 힉스장과 연관된 입자이다. 힉스장은 우주 공간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입자가 힉스장을 지나가면서 얼마나 힉스장과 상호작용을 많이 하는가에 따라 입자의 질량이 결정된다. 상호작용이 강할수록 질량이 무거워진다. 톱쿼크가 무거운 것은 힉스장과 반응을 많이 하기 때문이고, 광자는 반응을 하지 않아 아예 질량이 없다. 이처럼 힉스는 성질이 비슷한 입자들이 질량이 다른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다.

 힉스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실제 세계적 석학인 스티븐 호킹 박사는 “힉스가 없다는 데 100달러를 걸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전 세계 80개국 8천여 명의 물리학자와 엔지니어들은 둘레 27㎞에 달하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를 이용해 지난해 7월 LHC에서 검출된 소립자가 힉스 입자의 특성과 일치한다는 추론에 도달했다. 현재까지 계속되는 추가 연구를 통해 이 입자가 힉스 입자라는 게 확실해지고 있다.

 또 지난 4일에는 일본의 도쿄대와 고에너지가속기연구기구 등이 참여한 국제연구팀이 실험을 통해 힉스 발견을 학술적으로 증명했다. 질량의 기원에 대한 오랜 의문을 푼 셈이다.

 하지만 힉스 입자만으로 우주의 신비가 모두 풀리는 것은 아니다. 전체 우주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아직 실체가 증명되지 않은 암흑물질의 연구결과에 따라 현대 우주론의 허점으로 남아있던 많은 수수께끼들이 풀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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