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4:54 (금)
“돈이 될 줄 알고 호랑이 그리기 시작했는데…”
“돈이 될 줄 알고 호랑이 그리기 시작했는데…”
  • 구본호
  • 승인 2013.10.06 21: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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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송준의 명인열전 ‘호랑이 화가’ 구본호 화백
▲ 구본호 作 ‘롯데’.
코믹 호랑이 명성 안겨줘 한때 ‘천재’소리 듣기도
미술강의 명강사 유명세 500호 벽화 마무리 단계
‘공공예술’ 출간 준비중

 자타가 공인하는 부산에서 가장 바쁜 화가

 알고 지낸지 벌써 1년이 넘었다. 그래서 가끔 찾아가다 보면 부산시 하고도 금정구 오륜동 쪽으로 가다보면 길옆으로 갤러리들이 있고 식당들이 나온다. 그 식당들 옆에 자리를 잡은 거대한 창고가 눈에 들어온다. 오륜동 325번지에 있는 가건물 비슷한 창고형태의 규모가 큰 공장이다.

 그곳에 바로 화가들의 모임터인 집단 작업실이 있다.

 그곳에는 십여 명의 화가들이 있는 것 같았다. 조각가들이 있고 화가들이 있고 2명이 한 조를 짜듯이 한 공간에 있으니 5개의 공간이 서로 붙어 있으면 결국 10여 명이 작업을 하는 곳이 맞다.

 1개의 작업실 공간이 매우 크다. 대충 짐작해도 165㎡(50여 평)쯤 돼 보이니 말이다. 그들 중에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분들도 있다.

 그중에서 가장 바쁘게 활동하는 분이 바로 구본호(具本浩) 화백이다. 거주하는 자택은 작업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금정구 부곡3동 17-21번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동명대학교와 부산대학교 그리고 신라대학교와 신세계백화점에서 강의를 하는 관계로 항상 바쁘다. 또한 얼마 전까지 부산시에서 주관하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래서 작업실에 안나올 때도 많다. 따로 만날려면 미리 사전약속을 하고 나서 운이 좋을 때 작업실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 구본호 作 ‘까치와 호랑이’.
 호랑이의 화가

 처음 만날 때도 그림으로 본 호랑이가 인상적이었다. 그의 작업실에는 곳곳에 호랑이들이 있었다. 초기의 호랑이도 있고 최근의 호랑이도 있었다. 대부분 코믹한 호랑이로 익살맞은 표정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는 호랑이를 민화스타일로해 거의 호랑이만 전문적으로 그리는 화가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왜 호랑이를 고집스럽게 그리느냐고 말이다.

 “돈이 될 줄 알았죠…” 이 말은 구 화백이 고등학교때 미술을 전공하면 돈을 벌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에 밀양 산내면 원서리 시골마을 출신으로서 뜻하지 않게 미대에 진학했던 것과 같은 단순함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생계수단으로 미술에 대한 환상이 깨어진 것은 부산대학교 미대에 진학하고 나서 얼마 후의 일이었다. 생존의 모색 속에 방황과 갈등을 보내던 대학 2학년때 우연히 민화를 접하게 되면서 탈출구서 필이 꽂힌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서투른 것 같은 민화를 보고 더 진솔하게 표현할수 없을까 하고 고민을 하면서 시작된 작업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 성공의 기대감을 가지고 시작한 작업이라고 한다.

 그래서 최근까지 호랑이를 가지고 경주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지난 3월 23일에서 4월 21일까지 라몽 갤러리 기획초대전이 바로 그것이었다.

▲ 작업실에 걸려있는 호랑이 그림.
 한때 천재화가로 주목

 그에게 호랑이는 바람을 들어주는 호랑이고 자신의 야망을 풀어낼 수 있는 호랑이기도 했다. 그런 코믹 호랑이는 그에게 명성과 유명세를 안겨줬다. 일각에서는 천재화가의 등장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말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분위기는 사그라지고 있다.

 몽우 같은 화가도 10대 후반에 이미 천재화가 소리를 들었다가 이내 사그러들었고 지금은 다시 천재화가로 부상하듯이 아마도 구 화백도 그런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만큼 그는 호랑이 화가로 주목을 받았고 떠들썩한 시절을 겪어왔기 때문이리라. 도약을 하기 위한 웅크린 호랑이가 결국 도약을 제대로 못하고 스스로 고양이라고 비하하는 과정도 겪었던 탓이리라.

 정체성이 그를 혼란에 빠트린 적도 있고 이런 그의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혼란에 빠진 적이 있었던 것이다. 지난 2000년 8월 25일에서 9월 2일까지 열리는 부산 동래구 낙민동 전경숙 갤러리에서 구본호 개인전시회를 앞두고 8월 10일 공개 좌담회가 열렸다. 이 좌담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부산에서는 구본호 하면 호랑이인지 고양이인지 호랑이와 고양이를 합한 호양이인지를 그리는 작가로 알고 있습니다. 10년 가까이 호랑이만 그린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호랑이를 소재로 그렸고 간간히 호랑이와 다른 그 무엇을 결부시켜 역시 그림 전개를 시도했다. 결국 20년이 넘게 흘렀던 것이다. 그 와중에 비교적 호랑이와 멀리 떨어진 채로 전시회를 가졌던 것은 지난 2009년 11월 14일에서 19일까지 해운대구 중2동에 있는 갤러리 화인에서의 전시회였다.

 한지로 채색을 한 작품들이 많았고 주로 소나무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었다. 호랑이가 있는 작품은 한두 점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전시회는 대부분 호랑이였다. 그의 말이다.

 “나는 20여 년 동안 호랑이 그림을 그렸다. 실제 닮은 호랑이 그림은 몇 번 그린 적도 없는 호랑이 작가다. 아니 호랑이와 고양이를 합친 작가다. 호랑이를 대표하는 특성은 야수성이다. 그런데 호랑이의 이런 특성을 취하기보다는 호랑이의 외양, 즉 기표만 택했다. 형식만 빌려온 셈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조선시대 민화 역시 형식만 빌려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섭고 용맹한 호랑이가 아니라 곶감을 무서워하는 어리버리한 어리숙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는 우리의 선조들은 익살과 해학의 묘미가 기표에 있다고 믿었고, 부유하는 기표 속에 기의를 끄집어내는 재미를 가졌다고 한다.

 “나의 호랑이는 민화 속의 호랑이와 닮았다는 것을 누가봐도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민화에서 다시 형식을 빌려왔다. 현대의 일상을 가볍게 붓과 종이에 다가가고 싶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와 같이 기표 속의 기의를 풍부하게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후 구 화백은 다양한 실험을 했다. “호랑이가 나비를, 수양버들을, 구름을, 파도를 보면서 공상에 잠긴다. 이들의 소재 역시 조선시대 민화와 같이 기의적이다. 나비는 장수, 수양버들은 머무르다, 구름은 장수 등으로 읽혀진다.”

 호랑이를 소재로 하는 전시회는 초반에는 많은 화제와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지금은 더이상 신기한 것이 아니고 구 화백하면 호랑이 화가로 굳어지니 더이상 사람들은 예전의 관심을 받지는 못한다.

 또한 이제는 중견작가로 내몰리면서 후학을 가르치는 위치에 서고 말았다. 또한 어느 순간부터 각종 미술전시회의 후학들이나 후배들의 작품을 빛내주는 준원로급의 작가로 변해버린 것이다.

 대신 인기화가로 또한 부산ㆍ경남에서는 가장 바쁜 화가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다른 국내의 유명화가들처럼 전시회를 통해서 명성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전시회 보다는 작품활동과 저술활동 그리고 강의활동을 통해서 이름을 날리고 있기 때문이다.

 

▲ 작업실에서 구본호 화백.
과거의 기억 유하호

 지난 1993년 2월에 부산대학을 졸업후에 월간미술세계에 매달 글을 기고하면서 대학원에서 미술공부를 계속했다. 지난 1995년도에 첫 개인전 전시를 했다. 작품활동을 하면서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2군데서 받았고 박사과정도 마쳤다. 박사학위는 논문이 통과돼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지금은 논문작업도 준비를 하고 있다.

 월간 미술세계에서 10여 년을 일하고 나서 이제는 자유로운 몸이 됐다. 전시회는 수도 없이 했다.

 상도 많이 받았다. 지난 2002년 부산비엔날레건으로 부산시장표창장을 받았다. 2003년 1월부터 2010년 2월까지 부산비엔날레 학술위원으로 있었던 덕분인지는 몰라도 그 와중인 2005년에는 역시 부산비엔날레건으로 문화관광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 구본호 作 ‘유하석불(柳下石佛)’.
 지난 2011년에는 부산미술대전 학술평론(우수상)을 부산미술협회로 부터 받았다. 2004년도부터 2008년 2월까지 동명대학교에서 겸임교수를 했고 현재는 신라대학교예술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사단법인 문화예술인적자원개발센터 사무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구 화백의 전시경력은 더욱 복잡하다. 지난 2012년 개인전 (소울아트스페이스/부산) 등 13회를 했고 단체전으로는 2012년 수다떨기 그리고 확장하기(맥화랑/부산, 은암미술관/광주) 등 단체전 240여 회를 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지난 2011년 10월 6일에서 12일까지 해운대 중동의 피카소 화랑 호랑이 전시회였다. 버드나무가 아래의 뜻인 유하호와 유하석불이라는 작품을 공개했기 때문. 이후 그의 유하호와 그 시리즈의 일환인 작품 ‘한쪽 눈으로 세상보기’는 계속 됐다.

 또한 이 전시회에서는 마음을 비웠다는 뜻의 ‘유하석불’도 공개했다. 버드나무 아래의 부처의 검은석상을 묘사한 작품이다.

 이후 기억에 남는 최근의 전시회로는 지난 2012년 한미 회화축제(시카고 한인문화회관/미국)와 역시 2012년의 한ㆍ일 리싸이클링아트(부산광역시청 전시실/부산) 전시회였다.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

 구 화백은 부산시 중구 전포동 정림디앤시 14층 건물의 500호 벽화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또한 부산문화재단에서 지원금을 받아 펴내는 ‘공공예술(도시의 지속성을 논하다)’라는 제목의 책을 거의 마무리하고 출간을 준비 중에 있다. 책의 내용은 90퍼센트 이상 완성이 됐고 지금은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부산대와 동명대 그리고 신라대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창원대학교에서 한때 강의를 했을 정도로 미술강의로서는 둘도 없는 명강사라는 칭호 때문에 그 이름에 걸맞게 구 화백은 박사과정을 수료한 지금은 못다한 박사학위 논문도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천재성이 가미된 국내의 유명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나마 필수적인 단행본이 이번에 처음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의 앞날에 까치와 호랑이가 길을 밝혀줄 것만 같다.

▲ 구본호 作 ‘한쪽 눈으로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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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2013-10-07 02:34:02
명인열전 기대됩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좋은 기사 자주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