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첫 작품 ‘사랑이 어떻더냐’ 잡지 ‘문우’ 게재 확인
백석 첫 작품 ‘사랑이 어떻더냐’ 잡지 ‘문우’ 게재 확인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3.09.16 21:4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산고보 시절 이미 시조 최고경지 올라
▲ 일본 청산학원 유학 때 시인 백석(학적부 사진)
‘시인 백석’ 작가 송준 “충격적 사실” 평가

 한국문학사가 배출한 가장 걸출한 시인 백석의 첫 작품이 1927년 2월 20일에 나온 ‘문우(文友)’라는 잡지에 실렸음이 최근에 확인이 됐다.

 ‘문우’는 경성제국대학 예과 문우회에서 만든 잡지다. ‘문우’ 잡지 제4호 백석의 작품 ‘사랑이 어떻더냐’가 실려있는데 이 당시 백석은 오산고보 4학년에 올라가는 시기였다.

 이런 사실은 시인 백석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나온 3권짜리의 책자 시인 백석(도서출판 흰당나귀)에도 수록되지 않은 내용이다. 책의 저자인 송준 씨도 “충격적인 사실이다”라는 평가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을 정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이는 당시 백석에 대한 평가가 파격 그 자체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할 것이다.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들어간 학생들 중에서 문학도를 자처하는 이들이 모여서 만든 이 잡지에 당시 16살의 오산고보 학생으로서 백석이 참여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 잡지 ‘문우’에 실린 백석작품 ‘사랑이 어떻더냐’의 일부
 무려 10페이지에 걸친 내용의 ‘사랑이 어떻더냐’는 그 글의 수준이 매우 높고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을만 하다. 그 처음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왕승농상(王僧農商)은 서구의 엽자(葉子)어니와 주색재기(酒色財氣)는 동아의 골패(骨牌)의 근류를 이루고 있다. 재수소망(才數所望)은 다를지 모르지만 읊어지는 노래가락에는 술과 사랑이 왕위에 임어(臨御)하고 있음이 양양(兩洋)의 동궤(同軌)일다.

 더욱이 술의 찬미는 지나(支那)문학에 감(感)함을 보겠고 접역땅에 오나 쇠뼈 우리듯 우려졌지만 사랑에 한하얀 각국이 거개 독특한 음률을 가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사랑의 예찬을 시조에서 찾아 그 상(相)을 보련다.

 사랑은 사모를 가져온다. 세상에 사랑에 대한 노래처놓고 사모의 두자가 나타나지 않을 리가 있는가. 도정에 있는 사모는 번민을 가져오고 극도의 사모는 병까지 생기게 한다. 위선 우조 2중대엽으로 읊어보자.

▲ 잡지 ‘문우’에 실린 백석작품 ‘사랑이 어떻더냐’의 일부.
 바람불어 쓰러진 남기 비온다 싹이나며님그려든 병이 약을 먹다 나을소냐저 님아 이는 널로 난 병이니 네 고칠가 하노라다시 우됴중자디난엽으로 서정을 하야보면

 이리혀고 저리헤니 속절없이 험만난다험구진 몸이 살고자사라는가……생략…”

 백석은 사랑의 감정이 녹아있는 시조를 나열하면서 간단한 설명을 붙이고 있다. 무려 100편에 가까운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가곡원류나 청구영언에 소개가 되지 않은 작품들도 다수 들어가 있을 정도로 백석의 해박한 면모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백석은 이렇게 천재적인 역량을 이미 오산고보 시절에 발휘를 했다는 것은 국내 백석의 최고 권위자인 송 작가의 말을 들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잡지 ‘문우’의 목차.
 “백석은 오산고보 시절 이미 문학천재로 소문이 난 상태였다. 그러니 이 작품은 오산고보 시절 백석이 발표한 것으로 추정이 된다. 왜냐하면 이런 수준 높은 글을 쓰는 작가는 백석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이미 1927년부터 백석은 곡에 가사를 붙이는 실력이 뛰어나 작사가로 인정을 받았기에 왕평에게 노래 ‘황성옛터’의 원 가사를 줬다. 뒤이어 백석은 19살의 나이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은 우연이 아닌 실력이었다는 것이 이 작품으로 증명이된 셈이다.”

 송준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이 ‘사랑이 어떻더냐’는 1935년 백석의 ‘키스의 시문학’과 같은 스타일이라고 지적을 했다. 또한 시조의 권위가 아니면 이런 내용의 글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산고보 시절 특히 시조에 정통했던 백석의 면모는 유학을 갔다오고 나서 쓴 글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다시 한번 발휘했다고 한다.

 백석의 발표작 중에서 ‘사랑의 시문학’이라고 불리는 ‘키스의 시문학’은 백석이 일본유학을 다녀온 후에 조선일보 잡지 조광지에 발표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 작품과 이번에 발굴된 ‘사랑이 어떻더냐’는 스타일이 거의 같다는 것이다.

▲ 잡지 ‘문우’의 목차.
 따라서 최근에 발견된 ‘사랑이 어떻더냐’는 백석의 작품이 맞다는 것이다. 이는 백석이 이미 오산고보 시절에 시조에 정통한 수준의 최고경지에 올라갔고 그런 높은 수준이었기에 그 실력을 인정받아 ‘문우’ 지에 실린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널리 알려진 백석의 진면목은 아마도 이 문제작 ‘사랑이 어떻더냐’가 아닌가 합니다. 이미 오산고보 시절에 백석이 당시 조선의 민요와 시조에 누구 보다도 정통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송준 작가의 이런 평가는 시인 백석을 연구하는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작품이라는 뜻이다. 또한 백석의 모친은 시조에 정통한 유명한 기생이라는 설이 이 작품을 통해 더욱 확실히 알수 있다는 것이다.

 1912년에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1996년에 북한에서 작고한 시인 백석은 유독 경남을 사랑한 시인이었다. 그는 생전에 통영을 비롯해서 마산과 고성 그리고 창원 등 경남의 여러지역을 방문해 시를 남긴 국내에서는 둘도 없는 뛰어난 천재시인이라는 평가를 현재 받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고향 2013-11-02 07:00:21
좋은 기사 반갑습니다.

울산영남 2013-09-17 16:15:28
귀한 백석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