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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중지추(囊中之錐)
낭중지추(囊中之錐)
  • 박중식
  • 승인 2013.09.10 2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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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중 식 김해외국어고등학교 교장
 대학 입학을 위한 수능 시험일이 가까이 다가왔다. 수능 시험은 초ㆍ중ㆍ고등학교 12년간 학업의 총결산이면서 개인의 능력을 검증하는 국가 공인 시험이다. 고3 수험생은 4시간 잠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잠자면 떨어진다는 ‘4당 5락’을 마음에 새기고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그리고 부모님은 수험생을 상전(上典)처럼 모시면서 조바심하고 지낸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교육에 대한 집념은 정말 대단하다. 교육을 신분상승의 사다리라고 생각하며 자녀 교육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다. 대부분 사람이 가장 소망하는 것이 자녀가 공부를 잘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쉽게 늙어가지만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少年易老 學難成)”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부는 재미없고 어렵고 노동보다 더 힘든 것이다. 쏟아지는 잠을 참고 설명을 들어야 하고, 불안한 미래와 불확실성으로 정신 집중이 되지 않고 잡념에 빠진다. 이성(異性)에 눈을 뜨는 시기에는 이성과 데이트를 하기 위해 악마에 영혼을 팔아버린 파우스트가 돼 공부는 쳐다보지 않게 된다.

 공부하기가 어려운 것은 온갖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갈등을 극복하면서 심신 수련(修練)을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육체는 정신이 사라지지 않도록 담아 보존하는 그릇 역할을 하면서 정신을 완성하기 위한 도구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육체의 수련에 비례해 정신이 수련된다. 육체는 체감하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을 정신에 전달하며, 정신은 육체가 전하는 것을 바탕으로 정신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의 정신세계에 따라서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 그러므로 육체적으로 힘든 수련 없이 정신이 여물기 어렵고, 정신적 수양(修養)없이 인격이 고양(高揚)되기 어렵다.

 신라시대 고승(高僧)이었던 원효대사께서도 육체적 고통을 통해 도(道)를 깨달았다.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 원효는 도중에 지치고 허기로 쓰러졌다가 심한 갈증으로 물을 찾았다. 마침 옆에 물이 담긴 바가지가 있어 그 물을 마시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깨어났을 때 해골에 고여 있던 물을 마신 것을 알게 되었고 심한 구역질을 했다. 그 다음 순간 하나의 생각이 번쩍했다. ‘같은 물이지만 바가지라고 생각했을 때 그 물은 꿀맛이었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자, 세상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세상만사 일체 유심조(世上萬事一切 唯心造)’의 깨달음을 얻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공부하는 것 자체가 심신 수련이 돼 인품을 갖춘 ‘낭중지추’가 된다. 낭중지추는 ‘주머니 속의 송곳’을 나타내는 말인데, 능력이 있으면서 숨어 있는 인재를 의미하고 인재는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 말이 유명하게 된 것은 재치 있는 일화(逸話)에서 비롯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은 조(趙)나라는 지원군을 얻기 위해 재상인 평원군을 초(楚)나라에 급파하게 된다. 이때 평원군이 수행원을 뽑는데 모수(毛遂)가 스스로 자신을 추천한다. 이를 두고 ‘모수자천(毛遂自薦)’이라고 하며, 능력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전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평원군이 모수에게 “너는 몇 년 동안 내 집에서 일했느냐?”라고 물었다. 모수가 3년이 됐다고 대답했다.

 평원군 왈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는데, 3년 동안 나의 집에 있었는데도 너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며 선발을 거부했다.

 모수 왈, “그것은 저를 아직까지 주머니에 넣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저를 주머니에 넣어주면 송곳의 끝뿐만 아니라 자루까지 보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결국 모수는 수행원으로 선발됐고 초나라에 가서 모수의 활약으로 평원군은 환대받고 지원군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낭중지추는 단순히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하고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심신 수련 과정을 통해 능력이 출중하게 된 창의적 인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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