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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갈피> `밤이 지나간다` `도서 대출 중`
<새 책갈피> `밤이 지나간다` `도서 대출 중`
  • 경남매일
  • 승인 2013.08.12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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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이 지나간다`
지킬 만한 비밀조차 없는 시시한 인생
`밤이 지나간다`
편혜영 지음
(창비… 1만 2천원)

 어느 정도 질서가 생긴 다음부터 삶은 더이상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웬만한 일은 한두 번쯤 겪어 보았고 각각의 사태에 대한 나름의 대응법도 익혔다.

 그러나 삶의 질서는 대개 견고해 보여도 단번의 충격에 무너질 만큼 취약한 것이다. 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맹렬한 노력이 필요하다.

 편혜영(41)의 네 번째 소설집 `밤이 지나간다`에서는 이 맹렬함의 복판에서 어느 순간 맞닥뜨리게 되는 우리의 민낯이 드러난다.

 단편 `서쪽으로 4센티미터`의 주인공은 매일 왕복 500㎞를 달리며 고속도로의 시설물이 훼손됐는지 살펴보는 일을 한다. `어제 달린 길을 달렸고 어제 본 풍경을 보았고 어제와 같은 지점에서 오줌을 눴으며 어제 먹었던 것을 먹는 것으로 날마다 익숙한 자신을 만나는`(146쪽) 인물이다.

 그는 인생을 후려칠 사건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육중한 평정심에 매달린다. 자신의 삶이 놓인 대륙이 움직이는데도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틴다.

 소설집 속 어떤 인물들은 제 손으로 한 짓을 덮느라 여념이 없다.

 술집 화장실에서 취한 여자아이를 성추행한 마흔여섯 오퍼상(단편 `밤의 마침`)과 말 많은 여동생 때문에 교양 있는 어르신 노릇이 위태로워진 퇴직 교사(`비밀의 호의`)는 그동안 고수해온 삶의 모양에 변화가 없도록 가혹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최근 중구 무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는 "삶이 바뀔만한 어떤 기회도 없고 앞으로의 삶도 달라지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인물들"이라고 말했다.

 인물들은 좋게 말해 `안온`(安穩), 냉정하게 말하면 `정체`(停滯)에 불과한 삶을 적극적으로 지켜내지만 작가는 곳곳에서 그들의 기만에 경보를 울린다.

 단편 `야행`에서는 죽음 앞에 이른 할머니가 `아무리 되돌아봐도 일생을 통틀어 지킬 만한 비밀이 없는 인생`을 "시시하다"고 고백한다.

 252쪽.

▲ 도서 대출 중`
세상에서 가장 큰 서재를 얻는 법은?
`도서 대출 중`
이경신 지음
(이매진… 1만 3천800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서재를 꿈꾼다.

 원하는 만큼 책을 쌓아 둘 수 있는 넓은 집에 산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대부분의 책벌레는 불행히도 그런 곳에 살지 않는다.

 신간 `도서 대출 중`을 쓴 저자 이경신도 그런 책벌레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집 책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책을 소유하려는 마음을 비우고 동네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 순간 동네 도서관은 그녀의 놀이터이자 서재가 됐다.

 이 책은 저자가 22만여 권의 장서를 갖춘 평촌 시립 도서관을 드나들며 써내려간 도서 대출기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큰 서재`에서 발견하고 읽은 책을 통해서 문명과 자연이 조화로울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바람직한 일상을 꾸릴 수 있는지, 늙고 병들고 죽어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한다.

 서울대 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고 프랑스 폴발레리 대학교에서 근현대철학 전공으로 학위를 받은 그녀답게 책장마다 사색의 힘이 느껴진다.

 아울러 이 책에는 저자가 집과 동네 도서관을 오가며 책을 빌려 읽는 풍경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책을 빌려 읽으면서 겪은 황사와 여름 소나기, 직박구리와 매미, 더위와 과식 등 사소한 일상이 더해져 잔재미를 준다.

 "동네 사람하고 인사도 나누고, 직박구리를 비롯한 온갖 새도 만나고, 새순이 돋고 꽃이 부풀고 열매가 맺는 모습을 바라보며 계절의 변화도 느낀다. 또 시간이 있으면 공원을 몇 바퀴 천천히 산책하기도 하고, 날씨가 좋을 때는 공원 벤치에 앉아서 느긋하게 책을 펼쳐들기도 한다. 햇볕을 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배드민턴을 하거나 농구를 하는 청소년,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부부나 애견까지 데리고 다 함께 바람을 쐬러 나온 가족 등 사람 구경도 재미나다. 운 좋은 날에는 놀이터에서 그네도 탈 수 있다."(`시작하는 글`에서)

 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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