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0:58 (토)
사라진 사초, 21세기판 사화인가
사라진 사초, 21세기판 사화인가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3.07.28 22: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박재근 칼럼 본사 전무이사
 참으로 묘한 일이 벌어졌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기록물을 공개하느니 마느니 법석을 떨다가 막상 찾으려니 없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이란 위대한 기록을 남긴 우리가 세상의 웃음거리로 전락하다니 기막힐 일이 아닌가. 이런 와중에 사초(史草) 실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야 간의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절대 권력자가 존재한 조선시대에도 실록의 원본이 파기되거나 증발된 사례는 없다. 21세기 판 사화(史禍)로 비화될까봐 두렵다.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이 기록물로서 높은 신뢰성을 지닌 것은 편찬과정에서 편집의 독립성과 기록에 관한 비밀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사관(史官)이 절대 권력자인 국왕의 통치행위를 비판할 수 있는 직필을 휘두른 것은 그래서 가능했다.

 세종 13년(1431) 태종실록이 완성된 후 고려의 충신과 형제를 죽이고 처가를 도륙한 아버지의 역사가 어떻게 기록됐는지 궁금하고 걱정인 세종도 열람하지 못한 게 사초다.

 당시, 우의정 맹사성(孟思誠)은 "전하께서 보신다면 후세 임금이 이를 본받아 실록을 고칠 것이고, 사관도 사실을 기록하지 못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이어 세종은 7년 뒤 다시 한 번 더 태종실록을 열람하려 했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사관들의 직필(直筆)이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감시를 회피하려는 임금과 견제장치를 마련하려는 신하들 사이 힘겨운 줄다리기 끝에 정착된 제도다.

 그 예가 사관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던 태종 즉위 초 민인생(民麟生)은 병풍 뒤에서 왕의 말을 엿듣고, 얼굴을 가린 채 임금의 사냥 길을 따라다니다 괘씸죄에 걸려 귀양을 가는 등 그 때, 그 시절에도 남겨진 사초가 지금 이 시대에 사라졌다하니 귀신이 곡할 일 아닌가.

 또 여야의 정쟁으로 사초를 열람한다는 것 자체도 문제였다. 물론 NLL 논란에서 비롯됐지만 조선시대 때 사초(史草)로 인해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인 무오사화(戊午士禍)를 기억한다면 더욱 그렇다. 무오사화(戊午士禍)는 연산군 때 발생했지만 발단은 성종 때 시작됐다.

 김종직이 부관참시를 당한 그 사건이다. 왕비 폐출문제 등으로 어수선했던 성종 당시 중앙집권세력인 훈구파와 지방의 신흥권력인 사림파는 정치적인 양대 진영을 형성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이 원인이었다. 성종 집권 후 김종직을 중심으로 한 사림세력이 새로운 권력층으로 등장 3사(三司, 사간원ㆍ사헌부ㆍ홍문관)의 언론ㆍ사관직(史官職)에 배치돼 수양대군(세조)이 정권을 잡은 후 중앙집권ㆍ부국강병을 주장하며 권력과 재산을 모은 훈구 대신들의 비행을 규탄하는 역할을 맡았고 그 대립은 연산군 때 표면화됐다. 1498년 완성된 `성종실록`에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이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은 일을 비방한 내용"이 사초에 기록된 것이 훈구파에 의해 연산군에게 알려지면서 비롯됐다. 하지만 사림세력들이 사사건건 자신의 향락을 비판하면서 왕권의 전제화를 반대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연산군은 김일손 등에게는 선왕(先王)을 무록(誣錄)한 죄, 김굉필 등에게는 김종직의 제자로서 붕당을 이뤄 조의제문의 삽입을 방조한 죄로 귀양보냈다. 이미 죽어 무덤에 있던 김종직은 부관참시(剖棺斬屍) 당했다. 무오사화는 결국 훈구파가 사초를 문제 삼아 사림세력을 공격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오늘날 여야의 정쟁과 다를 바 없다.

 조선의 왕들이 스스로 선왕의 실록을 멀리한 것은 이처럼 사초가 판도라의 상자처럼 무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초가 사라졌다니 어이가 없다. 절대 권력자가 존재한 조선시대에도 실록의 원본이 파기되거나 증발된 사례는 없는데 그 원본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사건의 결론은 누군가가 사초를 헌신짝 다루듯 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여야 모두 입으로는 정쟁 중단을 외치고 있지만 여전히 대화록 증발 사태에 대한 해법이 서로 다른데 문제가 있다.

 새누리당은 대화록 행방의 검찰수사를, 민주당은 사전 유출돼 대선 때 사용된 것 등 특검을 주장하는 등 여야가 자당에 필요한 부분에만 `동력`을 유지하겠다는 속내다. 21세기 판 사화(史禍)로 비화돼 부관참시를 당하지 않으려면 사초를 갖고 장난질 칠 일이 아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