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 잘려나간 고통 지나 깊은 눈 얻어
16년 전 잘려나간 고통 지나 깊은 눈 얻어
  • 경남매일
  • 승인 2013.07.08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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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채가 없는…`
`색채가 없는…`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민음사… 1만 4천800원)

 부주의를 포함한 어떤 의도가 누군가의 가슴에 깊은 칼자국을 내는 일은 심심치 않다. 칼을 맞은 사람은 실제로 가슴에 칼자국이 남은 것처럼 오랜 시간 고통에 인생을 저당잡힌다.

 그 칼자국은 어떤 사람의 인생을 반으로 쪼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건의 이전과 이후에 자신이 더는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 장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서른여섯 살의 다자키 쓰쿠루가 격렬한 상처로 남은 과거의 사건과 그 사건에 맞물린 타인들을 마주하며 눈이 깊어지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린다. 소설은 여럿의 욕망과 불안이 어지럽게 뒤섞여 흔들리는 인생의 한복판에서 한 인간이 고통을 대가로 얻게 되는 어떤 시선에 대한 것이다.

 16년 전 쓰쿠루는 모든 걸 함께 나누던 고교 시절의 공동체에서 추방당했다. 이유도 모른 채 `더는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나머지 네 친구의 차가운 전화 속 목소리로 절연 당했다. 그동안 함께 나눠온 마음이 무색하도록 쓰쿠루는 단칼에 잘려나간다.

 쓰쿠루가 스스로 `축축한 돌 아래에서 살아가는 하잘것없는 벌레`처럼 여기는 것도 무리가 없다. 1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쓰쿠루는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한 친구를 제외한 나머지 세 친구를 찾아가 자신이 외면당한 이유를 묻는다.

 이들이 쓰쿠루에게 잘못한 건 확실하다. 이들이 제 잘못을 조금이라도 보수할 수도 있었던, 그러나 해명도 사과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16년의 세월까지 합치면 용서받기 어려운 잘못이다.

 친구들의 이름엔 색깔을 뜻하는 한자가 하나씩 들어 있지만 쓰쿠루의 이름엔 없다. 아주 사소한 거지만 이미 쓰쿠루가 고등학생 시절에 자신만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라고 생각할 때부터 인간 사이의 필연적 틈은 예고된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다섯 명은 빈틈 하나 없이 거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 그러나 그런 최고의 행복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 낙원은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이다." 440쪽.


▲ 안녕, 내 모든 것
"휘발돼 버린, 꼭 얘기하고 싶었던 90년대"
`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 지음
(창비… 1만 2천원)

 지금 같으면 잘 상상이 안 되는 일들, 이를테면 대낮에 백화점이 무너지고 한강 다리가 끊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20대는 신세대로 불리고 10대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따라 너도나도 흰색 반팔티에 야광 나시를 입던 시절이기도 했다.

 정이현(41)은 새 장편 `안녕, 내 모든 것`에서 이 시절로 직행한다. 1980년대와 2000년대의 어설픈 자락처럼 느껴지고 IMF 구제금융이라는 충격까지 겹쳐 기억하기 꺼려지는 1990년대다.

 "민주화가 됐다는 새 시대의 분위기에 물자가 넘치고 해외여행도 자유화되고…. 이상한 낭만이 흐르고 붕 떠 있던 시절이었어요. 그때 성수대교도 무너지고 삼풍백화점도 무너졌는데 다들 애써 실금들을 무시하다가 IMF로 `뻥` 터진 거죠. 그때를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것 같아요. 1990년대는 소비되고 휘발돼 버린 느낌이라서 애잔하고 쓸쓸해요. 그 시대에 대한 얘기를 꼭 하고 싶었어요."

 소설엔 1978년생 동갑내기 세 친구 세미와 준모, 지혜가 등장한다. 부유한 외가에 떠밀듯이 맡겨진 세미와 뚜렛 증후군으로 아무 때나 욕설이 튀어나오는 준모, 엄마 아빠를 `맘(Mom)`과 `대디(Daddy)`의 머리글자인 `엠`과 `디`로 부르는 지혜다.

 제 몫의 상처가 선연한 세미와 준모, 그리고 10대 특유의 과장된 예민함 말고는 큰 탈 없는 지혜는 서로에게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시절을 산다. 셋이 모일 때 맥주도 사다 놓지만 `복잡해질 뒷일을 감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50쪽) 따라놓기만 하고 마시지는 않는 10대의 까다로운 시절을 서로가 다독이며 통과한다.

 "`마이마이` 아세요? 저의 학생 시절은 `마이마이`를 얻기 위한 투쟁의 시기였어요(웃음). 이어폰을 끼고 마이마이로 자기만의 음악을 듣던 경험이 저한테 깊숙이 있어요. 19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세대는 개인의 개체성을 중요하게 여긴 첫 세대 같고…. 제 문학세계에서는 지금도 개인성이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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