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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떨어지는 한 떨기 꽃 <171>
제11화 떨어지는 한 떨기 꽃 <171>
  • 서휘산
  • 승인 2013.07.03 2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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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떨어지는 한 떨기 꽃 (1)
 “……….”

 “무슨 일이나 없으면 좋겠네만.”

 “현명한 아이니 별일이야 있겠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영봉의 얼굴도 연민과 근심 투성이였다. 방안에 정적이 흐르자 백지한이 화제를 돌렸다.

 “오는 길에 나팔호를 만나고 왔네.”

 “그래 뭐라든가? 그 놈은.”

 영봉이 미간을 좁혔다.

 “참회를 모르는 놈이었어.”

 “잡아떼던가?”

 “그렇더군.”

 백지한이 던지듯 말하고 입술을 악물었다.

 “그렇다면 복수를 할건가?”

 “경우에 따라.”

 영봉이 찻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놈은 덩치완 달리 아주 약삭빠른 놈이네. 신중해야 돼.”

 “……….”

 “비호세력도 많을 거야.”

 백지한의 일그러진 얼굴이 아래위로 움직였다.

 “원한다면 내가 도와주겠네.”

 백지한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내 손으로 해결하고 싶네.”

“존경하는 유권자 여러분! 저 정일육입니다. 바쁘신데도 연설회에 참석해주신 구민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지랄!”

 내뱉은 건 횟집 주방장 이갑식이고, 심부름센터 영업부장 홍순도가 받았다.

 “씨발새끼, 속은 거머리로 우굴우굴 험시로.”

 서울 구로초등학교 운동장이다. 구로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전이 한창인 것이다.

 구로을은 본래 신라당의 이준표가 국회의원으로 있던 곳이었다. 이른바 빠찡꼬의 대부로 알려진 정덕진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던 박철언을 구속시켰던 인물이다. 그 사건 하나만으로 샛별이 되었던 이준표였다. 그러나 그 이준표도 선거법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 받아 의원자격을 박탈당했고, 정권이 바뀌는 순간 안기부에서 쫓겨난 정일육이 신나라당의 추천을 받아 이준표 대신 국회에 진출하려는 것이다. 그 정일육이 한 손을 번쩍 쳐들었다.

 “구민 여러분! 이 정권은 독재정권입니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자유를 위해 몸을 던졌던 민주투사들이 모조리 쫓겨나고 있습니다.”

 “민주투사는 지가 다 조져놓고선…….”

 홍순도가 침을 뱉자, 이번엔 이갑식이 덧붙였다.

 “저새끼는 창녀들 포주나 허먼 딱 어울리는디.”

 잠시 후, 무소속의 김백범 후보가 연단으로 올라왔다.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입을 열었다.

 “구민 여러분. 기호 3번 김백범입니다.”

 김백범은 대학졸업 후 빈민들이 모여사는 판자촌에서 기거하며 20여년을 평생 민초들을 대변해온 가난한 투사였다. 따라서 구로을 보궐선거는 극과 극을 달리는 두 후보가 맞붙은 것이다.

 막강한 권력과 화려한 경력으로 인권을 유린했던 정일육.

 민중의 벗이자 실천적 지식인인 인권옹호자 김백범.

 이윽고 김백범이 두 손을 하늘높이 펴올리고 사자후를 토했다.

 “여러분! 진정으로 구민을 위하고, 더 나아가 국가를 위하고 인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누구여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번 기회에 꼭 가려주시리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옳소!”

 “잘헌다!”

 청중들이 목청을 돋구어 응원하는 사이 홍순도가 한마디하며 운동장을 빠져나갔다.

 “저런 인물이 국회로 갔다가 대통령까지 되야는디…….”

한편, 병실을 뛰쳐나간 수련은 그 길로 ‘해향’을 찾아가 있었다. 백지한의 고향인 진해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장복산 기슭에 자리잡은 해향은 최고급 요정이다. 건물 주위는 벚나무로 온통 우거져 있고 그 화려한 풍경만큼이나 멋진 아가씨들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저명인사가 아니면 받지도 않는다.

 나팔호를 파멸시켜야 한다는 결심으로 뛰어들긴 했지만 수련은 솟구치는 슬픔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특히 반항하듯 소리치고 떠나온 백지한에게는 너무나 죄스러울 뿐이다, 그녀는 시간만 나면 마음속으로 백지한과 얘기했다.

 ‘미안해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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