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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사랑, 그 하나로 <170>
제10화 사랑, 그 하나로 <170>
  • 서휘산
  • 승인 2013.07.0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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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사랑, 그 하나로 (46)
 화를 삭이며 백지한이 나가자 나팔호는 소파에 무너지듯 몸을 묻었다. 극도의 피로감이 폭염처럼 엄습해 왔다.

 ‘개새끼! 나보고 사표를 쓰라고?’

 그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 자리가 어떻게 이룬 자린데…….’

 사실 나팔호는 야심만만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의 의도대로 출세가도를 질주해 왔다. 상사에게는 상납과 아부를 철저히 하는 한편 부하들에게는 독려의 채찍과 당근을 주어 실적을 급격히 쌓아올린 덕이었다. 서장이 되고부터는 유흥업소를 협박해 받은 부정한 돈으로 정계와 관계, 그리고 검찰 쪽까지 선을 대놓고 있었다. 가히 무서울 게 없는 기세였다.

 그러나 그도 백지한의 가족을 파멸시킨 이후부터는, 백지한과 그의 친구들이 그를 언제든 복수해 올 것이라는 강박관념에서 한시도 해방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백지한이 출감한 이후, 작두와 그 똘마니들이 자행한 테러가 실패하자 그의 불안은 더욱 심해졌다.

 그후 그는 어디를 가든 권총을 휴대했다. 그러나 강한 의리로 뭉쳐있다던 백지한의 친구들이 그 동안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것은 천만 다행이었다. 그로 미뤄보아 백지한은 어느 누구에게도 말을 못하고 혼자 분을 삭이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조심해야 돼.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어.’

 초조한 눈을 번득거리고 있는 그는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소파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그날 백지한이 삼랑진 무궁사에 도착한 건 밤이 이슥해서였다. 기다리고 있던 영봉이 두 손을 움켜잡았다.

 “어서 오게.”

 “자지 않고?”

 “자네가 온다는데 내 잘수가 있나?”

 영봉이 환히 웃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백지한이 똑같이 웃으며 영봉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주지실에 마주 앉자 영봉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래 수련화와 함께 한 신혼 기분이 어떻던가?”

 백지한이 일단 장난을 맞받았다.

 “꿀맛이었지.”

 “그래, 그랬을 거야. 핫하하.”

 영봉이 유쾌하게 웃고 다시 물었다.

 “근데 어째 혼자 왔나? 수련화는 어떻게 하고?”

 “……….”

 백지한이 시선을 내리며 긴 숨을 뱉았다.

 “왜? 무슨 일이 있는가?”

 이윽고 백지한이 머리를 들었다.

 “아이가 없어졌네.”

 “뭐라고! 없어져?”

 영봉이 눈을 치켜 떴다.

 “……….”

 “도대체 무슨 일로……?”

 “……….”

 “얘길 해보게.”

 영봉이 근심을 가득 담고 채근했다. 백지한은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얘길 할려면 기네.”

 “그래도 해보게나.”

 “차부터 한 잔 하세.”

 “이 사람 여유는…….”

 영봉이 혀를 찼다.

 “여유가 아니라 목이 말라서 그래. 빨리 따르게.”

 “알았네.”

 영봉이 대답하고 찻잔을 채웠다.

 백지한은 잔을 들어 한 모금에 마시고 입을 열었다.

 “사실 아이와 같이 한 병실 생활은 꿈같은 날들이었네. 아이도 좋아했고.”

 “그런데?”

 “그날은 아이가 다른 날과 달리 심각했네.”

 그날 일어났던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있는 백지한의 얼굴은 침울했고, 그 얘기를 영봉은 차분하고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이윽고 백지한이 얘기를 모두 끝내자 영봉이 못내 안타까움을 토해냈다.

 “그러니까 내 뭐라든가. 수련화의 청을 들어주라 하지 않았던가!”

 백지한이 이마를 쓸었다.

 “그 나이엔 사랑이 세상의 전부로 아는 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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