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20:52 (토)
제10화 사랑, 그 하나로 <168>
제10화 사랑, 그 하나로 <168>
  • 서휘산
  • 승인 2013.06.30 22: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10화 사랑, 그 하나로 (44)
 "상대는 조폭들이었습니다."

 백지한은 입술을 꽉 물고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전봉준을 바라보았다.

 "알고 싶은가?"

 "예."

 전봉준이 대답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이방언이 바라본 백지한의 얼굴은 추억에 잠긴 듯한 표정이었다. 이윽고 백지한이 담배 한 가치를 침대 머리맡에서 꺼내들었다.

 "불 여기 있어라."

 이방언이 재빨리 불을 붙이자 길게 한 모금을 빨아들인 백지한은 다시 생각에 잠겨 말이 없었다. 애가 탄 전봉준이 재촉을 대신해 자신을 털어놓았다.

 "전 수련씰 위해 모든 걸 바칠라고 헙니다."

 "왜?"

 "사랑허기 때문입니다."

 "사랑, 그 하나로?"

 "예."

 전봉준의 이글거리는 눈이 결연했다. 이윽고 백지한이 침대 머리맡에 편안히 등을 기댔다. 그리고 지난 얘기를 시작했다.

 "그 아일 내가 처음 만났을 땐 그 애도 나도 참 어려운 때였어."

 백지한은 처음 그가 수련을 만났던 때와 그녀를 맡게된 동기를 얘기하고, 아울러 수련이 무궁사에서 성장하게된 이유를 들려주었다. 얘기를 듣는 정봉준의 표정이 진지했다. 백지한은 중간중간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그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방언도 숨을 죽이고 백지한의 얘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약 반시진에 걸친 백지한의 회고가 끝났을 때 전봉준은 새삼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는 일단 백지한과 수련이 영봉이 말한, 이른바 비익조와도 같은 연인관계가 아니란 것에 마음을 놓은 것이다. 그가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무슨 죄로 깜방을 그렇게 드나드셨는지……?"

 "그건 묻지 말게. 내 개인 일이니."

 "지난번 사고는 신문이나 방송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

 "경찰들도 아는 사람이 없고."

 "다 알아봤군."

 백지한이 싱긋 웃고 말을 이었다.

 "나도 원하지 않고 그쪽에서도 원하지 않으니까."

 "그건 왜지라?"

 이방언이 물었으나 백지한은 그 말에는 대답 않고 전봉준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열정으로 일렁거리는 부리부리한 그 눈이 맘에 들었다.

 "자네라면 우리 수련일 맡겨도 되겠군."

 "감사합니다."

 "근데 녀석은 어디로 갔는지……."

 "저희들이 찾아보겄습니다."

 "고맙네."

 "퇴원은 언제……?"

 "일단 수련이 돌아오는 걸 기다려보고 안 오면 사나흘 후에는 나가야겠지."

 "예……."

 전봉준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이방언이 물었다.

 "그란디 수련 씬 왜 오늘 저렇게 뛰쳐나갔는가요?"

 백지한은 대답 대신 왼쪽 가슴을 누르며 창 밖에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방언이 수련의 부존재를 새삼 일깨워준 그 순간, 걷잡을 수 없는 불안이 그의 가슴을 덮친 것이다.

 `어디로 갔는지…….`

 수련이 격한 감정으로 병실을 뛰쳐나간 지도 사흘이 지났다. 그녀는 더 이상 나타나지도 않았고, 연락도 신호도 없었다. 그녀가 없는 병실은 적막강산이어서 마치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듯한 허전함이 백지한의 전신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그의 슬픔과 충격은 컸다. 그녀가 떠나버린 지금 단풍처럼 불타 오르던 그의 얼굴이 핼쑥해져 있었다. 그녀의 자취 집으로 사람을 수 차 보내 왔으나 그곳에도 온 적이 없단다.

 `제발 아무 일이 없어야 할텐데…….`

 백지한은 깊은 숨을 연신 내쉬며 사흘을 기다리다가 걱정 속에 퇴원했다. 병원에서 꼬박 두 달을 넘긴 정월 대보름날이었다. 병원을 나온 그는 먼저 경남지방경찰청을 찾아갔다. 나팔호는 마침 청장실에 있었다. 그의 어깨에 달린 흰 별 두개가 차갑게 번쩍거린다.

 "오랜만이요."

 백지한이 거침없이 다가서자 나팔호는 둥그렇게 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